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신꽃신내꽃신 Jun 03. 2022

고추 먹고 맴맴 앵두 먹고 푸푸

누가누가 맛나나,  초록 세상 vs  컬러 세상




   짙푸른 유월 아래로 노랑노랑이 떼 지어 서서 여름을 불러 모은다. 앞집 텃밭의 감자꽃 울타리에도, 뒷집의 덩굴장미 곁에도, 참새들 모여 앉은 검은 전깃줄 아래에도, 울산역의 녹슨 옛 철길에도, 주유소 건너편의 벚나무 그늘에선 버찌에 얻어맞으면서까지. 도로변도 담장 가도 꽃밭도, 눈 닿는 곳마다 노랑바람이 노랑을 흔들어댄다. 흔히 금계국이라 불리지만 실제 이름은 큰금계국. 미국 코스모스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 그렇다. 뿌리와 씨앗으로 무럭무럭 영역을 넓혀가는 절대 번식력. 그 막강함에 내 얼굴은 샛노랗게 물들었다.   

 

오디와 보리수 열매 너머에서 이웃 농부가, 무논 6백 평을 혼자서 모내기했다.



   빠른 걸음에 등이 촉촉해지는 즈음이면, 우리 집으로 드는 국도의 갈림길엔 큰금계국꽃밭이 펼쳐진다. 흔하고 흔해서 여름이 왔구나, 지나치곤 했다. 지난해 초여름의 저녁답 산책길에 왜 내게 큰금계국 욕심이 일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을까만. 두 뿌리를 뽑아 우리 집 꽃밭에 옮겨 심었다. 시들시들의 며칠을 보낸 후 꼿꼿해진 생명력이 기특했다. 실수였다, 진정. 노랑을 좋아한 마음이 바늘도둑 손길을 뻗쳤던 일은.   

 


   영산홍 지고 할미꽃 지고, 양지꽃 지고 너도부추꽃 진 땅에서 무리 지어 솟아난 줄기들. 저 푸른 꼭대기는 지난해를 이어 어떤 색색들이 볕을 더 붉히려나. 기대한 곳마다 노랑과 노랑 일색. 백일홍과 과꽃 분홍까지 가로챈 노랑. 듬성듬성 피어나는 과꽃은 패랭이로 착각할 만큼 조그맣다. 두 뿌리의 힘이 한 해만에 1천 송이 가계를 이곳저곳에 펼쳐 이루다니. 담장 곁 무리까지 세면 3천 송이 가계가 넘을 것이다. 담장 주변은 때 이르게 피는 멕시코산 코스모스(우리의 가을길 코스모스도 해방 이후 도입한 귀화식물) 자리였건만. 그러고 보니 3년을 만나온 색색 코스모스가 한 송이도 안 보인다. 이게 대체 무슨 노랑 조화인가.



   미국에서 들어와 토종 생물을 위협해 영역을 확보한 것들이 큰금계국뿐이랴. 가시박, 도깨비가지, 나래가막사리, 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 등 많고도 많다. 우리도 미국인을 점점 닮아가는데 주변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가. 지구는 변함없이 둥글고 둥그니 어느 곳에선들 외래종이 굴러들어오지 않으랴. 남아메리카 아마존강의 피라니아, 남아프리카의 발톱개구리, 중국의 꽃매미 등 동식물 포함 몇천 종이다. 큰금계국은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서울 올림픽대회가 열린 1988년의 꽃길과 공원 조성사업으로 전국의 국도변은 노랗게 물들었다. 금계국이 한해살이인 반면 큰금계국은 여러해살이다. 본래의 고유식물을 매년 밀어내면서 전 지역을 잠식했다.


큰금계국꽃잎을 따서 차를 우렸다. 이쁜 노랑을 마시는 기분이 노랑노랑.



   나 스스로 생태계 교란식물을 데려와 멀쩡한 꽃밭을 노랗게 물들였으나, 어쩌겠는가. 한창 이쁨을 뽐내는 것들을 뽑아내버릴 수도 없으니. 온 꽃밭이 노랑으로 덮이기 전에 조치를 취하긴 해야는데 어쩌나. 에효, 이번엔 노랑꽃밭 여름을 노랑스럽게 나는 수밖에는. 샛노래진 얼굴로 금계국을 검색하다가 금계국 차를 알게 되었다. 옳지! 한 움큼 따서 씻었다. 뜨신 물을 붓자마자 금세 불그스름한 차가 만들어진다. 노랑의 변화 색이 신기하다. 흐음, 색이 이쁘니 맛도 좋겠지? 흐음음, 꽃과 맛이 닮음꼴이다. 싱거운 듯한 담백함, 노란 색깔처럼 깔끔한 맛.        

    


   싱거운 듯한 담백함과 노란 깔끔함을 넉넉히 마신 후, 신맛과 단맛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앵두를 한 주먹 땄다. 물에 헹궈서 하나 먹고 , 두 개 먹고 푸풋. 세 개 먹고 푸 푸 풋. 팡팡팡 터지는 앵두꽃에 흥겨웠던 눈과 귀가 어제 같은데 어쩌자고 또, 이토록 붉고 연푸른 열매를 익혀 혀끝을 신나게 하는가. 이쁘고도 이쁜 앵두나무야. 텃밭 옆의 논에서 탈탈탈 털털털, 모 심는 기계 소리가 종일 난다. 어릴 적 기억에 든 부모님의 이맘때는 손으로 일일이 옮겨 심는 모내기였는데. 기계 한 대와 사람 한 명으로 널따란 무논이 속속 푸르러진다. 해가 이운 후 앵두 한 소쿠리를 땄다. 앵두에 소주를 부어놓으면 저 알아서 발갛게 술들어가는 빛깔이 곱고도 곱다. 퇴근한 남편과 텃밭에 내려가 보리수 열매도 한 소쿠리 땄다. 지난해와 달리 이번엔 열매가 한꺼번에 익어버렸다. 애타는 가뭄과 뜨거운 태양을 못 이긴 까닭이리니. 어둔 수돗가에서 몇 번을 헹궜더니 열에 아홉이 물러터지고 말았다. 이를 어째. 또 일거리를 만들었다. 보리수주를 담그려 했는데 난감하다. 온전해 보이는 것들을 일일이 골라내 키친타월에 널었다. 건드리면 터질 모양새라 더 손을 대기가 어렵다. 물기가 있으면 곰팡이술이 되므로 수분이 증발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나머지는 잼으로 만드는 도리뿐이다. 보리수는 씨앗이 열매의 반을 차지하니 제법 번거롭다. 냄비에 넣어 익히면 씨앗이 저절로 분리될 것 같았는데 웬걸, 껍질이 되레 여물어진다. 바구니에 넣어 주무르고 주무르고 주물러 씨앗을 일일이 골라냈다. 에잇, 닭들한테 줘버릴까? 수시로 용솟음쳤다. 그럼 열매의 시간들은 닭들 몫인가. 먹어서 사라지는 건 매일반인데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뭐지. 약한 불에서 끈적하게 졸아들 때까지 몇 시간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라니. 초보주부 노릇 때처럼 시골살이 노릇도 수월치가 않다.


보리수도 앵두도 맘껏 익었다. 시골살이의 맛이 발갛고 푸르다.



   텃밭에 모종으로 사다심은 고추, 가지, 오이가 내일의 입맛을 향해 쑥쑥 자라난다. 양배추, 호박, 참외, 방울토마토, 애플수박의 입맛은 내일 이후를 기대 중이다. 텃밭 야채의 달고 부드러운 맛을 알고부터 식당에서 만나는 야채는 예전의 입맛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텃밭을 가꾸고 수확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그럼에도 입과 뇌가 호사하는 맛남이 있다. 저주받은 피부와 축복받은 외모를 동시에 소유했다는 서유럽인들처럼 시골살이도 그러한 양면성을 지닌 것이려니. 옆집 담장에 얹힌 붉은 덩굴장미가 변색 중이다. 우리 집 꽃밭에선 붉은 나리가 줄줄이 봉오리를 터뜨린다. 분홍 자리를 차지하고는 즐거이 춤춰대는 큰금계국을 1백 송이쯤 뽑아냈다. 나의 바늘도둑 손끝이 노랑바람에 수십 번을 아야, 아얏, 두드려 맞았다. 어쩌겠는가. 다채로웠던 지난 꽃들을 불러오지 않으면 내년의 꽃밭은 모조리 노랑바람에 휩싸일 것이니. 크나큰 번성을 꿈꾸는 노랑 일가에 미안할 따름이다. 뒷목을 찌르는 태양이 따갑다. 앵두 따먹으러 담장으로 큰 모자 쓰고 간다. 원두막에 앉아 , 푸풋,  풋 풋…, 씨앗을 발라 내 맘대로 잔디마당에 뱉으러 한들한들. 내년 이맘땐 노랑을 물리친 앵두나무가 빨강새싹바람을 몰아오겠지.           

          

고추도 오이도 커간다. 둘째가 두 번을 잡아와 삶아준 배스를 먹으며 꼬꼬꼬~ 맛나게 노래하는 청계들. 검은 닭 알크메네는 알 품느라 꼼짝하지 않는다. 주말엔 병아리를 보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생활 놀람 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