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xWdhs님의 이미지입니다.
글을 쓰다가 '애달프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단어를 찾아봤다. 뜻이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이다.
단어의 뜻을 보고 난 후, 마음에 계속 머물렀다. 과거 몇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속에 나를 돌봐주지 못했다. 과거 나를 만나는 이미지 연상작업을 하고 나서 계속 과거 내가 떠올랐다. 나를 쫌 봐달라고, 돌봐달라고 하나씩 방 속에서 나를 부르는 거 같다. 마음속에 여러 방들의 문이 굳게 닫혀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더랬지. 아프고 힘든 기억을 그 방 속에 밀어 넣어버리고 느끼지도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애달팠다.
눈물샘이 한번 넘치니, 자주 흐른다. 아마도 그동안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예전의 눈물은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힘들고 힘듦을 견디느라 쏟은 눈물이었다. 지금 눈물은 주변도 보이고, 나도 보인다. 과거 그 상황 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도 보이고, 상대방도 보인다.
이제 과거의 나를 만나야 할 시간이 된 듯하다.
자기 합리화에서 넘어서서 자기 연민으로 갈 수 있을까.
심학원 5월 과제를 하면서 정리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 자기 친절 : 자신의 실수, 부족함에 대해 수용.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 부족함도 수용함.
자신의 실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공감하므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음.
- 자기 합리화 : 자신이 옳다고 믿게 만드는 방어기제.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함. 성장하기 힘들 수 있음.
이 두 가지 개념의 차이는 자신의 실수, 부족함을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나를 만나면서, 나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부분이 포인트였다.
최근에는 1,2년 전의 내가 계속 떠오른다. '여유 있게 논문을 적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다. 그 상황 속에서 부족한 나도 보인다. 예전에는 그 '부족한 나'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애썼다. 상황 탓을 하고, 때로는 남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고 행동한 건 나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내면 작업의 포인트이다.
21년도에 첫 슈퍼비전을 받았던 선생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현재 주슈퍼바이저 선생님이다. 점심 먹고 상담하는 동료들과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했던 말씀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선생님이 이제 힘이 생겨서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거겠죠."
아침 사례회를 할 때마다 선생님의 상담 능력이, 전문성이 부러웠다. 얼마만큼 해야 할까요 물었을 때 그러셨다.
"일단 십 년은 해야죠."
그래서 정한 기간이 10년이었다.
이제 그 10년의 일 년 차일뿐이다. 나라에서 내 나이를 두 살 깎아줬으니, 10년이라고 하면 나이의 앞자릿수가 딱 바뀌는 해이다. 오십 대의 나를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사진 속 사과를 보는 순간
한쪽은 부족한 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한쪽은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하는 마음이 떠올랐다.
두 가지 마음 모두가 내 마음이라는 것도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