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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Dec 29. 2023

The Concert

힘듦과 기쁨은 한 몸이다

 2023.10.8 일 

김동률 콘서트 늦은 후기



토요일 오후 올림픽공원 안 카페이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투명한 창을 중심으로 안 밖으로 나뉜다. 방금 비가 그쳤다. 분명 일기 예보에는 비소식이 없었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우산을 가지고 나왔을까. 각기 다른 우산들이 눈앞에 지나갔다. 안쪽 공간에는 커피 향이 가득하다. 옆 테이블에는 네 명이 앉아있다. 평균연령 50대 후반에서 60대로 보인다. 결혼하는 아들에 대해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내가 도착한 것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그전에 언제 도착한 것일까. 제법 큰 매장이었는데 가득 찼다. 사람들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합쳐지니 정신이 없다. ‘웅성웅성’이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 알 거 같다.

 오후 2시 15분, 공연은 오후 6시다. 심학원 과제를 하려고 책을 펼쳤다. 귀마개를 해도 웅성거림이 뚫고 들어온다. 머리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어깨 쪽이 뭉쳤다. 집에서 나온 지 이틀째다. 어떤 이들은 집 밖에서 잘 수 있어 좋겠다고 했다. 좋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다. 공연을 보는 그 150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힘들다. 허리도 뻐근하고 무릎 위 허벅지 근육에 불편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이틀 전 금요일 고속버스에서 다섯 시간 넘게 꼼짝할 수 없이 앉아있던 그 긴장이 남아 있어일 것이다. 오늘 공연도 마치고 심야고속버스를 탈 예정이다. 벌써 무릎 쪽에 긴장이 느껴진다.


이렇게 할 만큼 콘서트가 간절했나?


 숙소도 잡아야 했다. 연휴라서 똑같은 방인데 금액이 달랐다. 주말 금액은 평일 두 배를 훌쩍 넘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다른 곳으로 예약했다. 첫날은 익숙한 곳이었다. 둘째 날 긴장한 상태로 숙소를 찾아갔다. 어머나, 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1인실인데 단기 숙박용으로 지어진 곳이라 공용 주방, 세탁실, 코워커방, 크리에이터방도 따로 있었다. 주 숙박 연령대가 20대였다. 그야말로 힙한 곳이었다. 사십 대는 나 혼자인 듯했다. 긴장한 마음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신기하다. 감정은 동전의 양면 같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다 못해 내적 기쁨으로 연결되었다.


 과거 모임도 그랬었다. 20대에는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했다. 주말에는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결혼해서 남편이 한참을 나를 관찰하더니 그런다. “너는 나가기 직전까지 싫어하는데 막상 모임 가면 신나 가지고 말도 많이 하고 오잖아. 너 사람 좋아해.” 몰랐다. 긴장상태를 한 단계 넘어서면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그동안 힘듦과 기쁨은 한 몸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오늘 콘서트도 그럴 것이다. 오후 6시까지 몇 시간 동안 웅성거리는 카페 한편에서 책을 읽으며 버틸 것이다. 온몸의 긴장을 느끼며 말이다. 분명 콘서트가 시작되고 한 곡만 들어도 기쁨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역시 오길 잘했어.’ 이러면서 말이다.


 지금 이 순간, 힘듦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진다. 따로 구분할 수 있는 거였을까. 이 고개를 지나면 숨 쉴 수 있는 구간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 예전에는 삶에는 기쁨만 있을 거라 착각했었다. 그러니 조금만 힘들어도 죽을 것 같았다. 힘듦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애초에 존재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그들은 한 몸이다.


가수 정인의 ‘오르막길’이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도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시간의 오르막길을 올라서 공연장으로 들어가 착석했다. 양 옆자리 주인들이 오지 않고 있다. 오후 6시 공연시간 5분 전인데도 말이다. 이러다 나 혼자 여유롭게 보려나 살짝 기대했다. 5시 59분, 두 사람이 들어왔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저희 일행인데 혹시 자리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흔쾌히 그런다고 했다. 사이드자리라 한 칸만 옮겨도 잘 보였다. 그쪽에서 고맙다고 키세스 초콜릿 6개를 주었다. 초콜릿을 입 안에 넣으니, 온몸에 기분 좋음이 퍼져나갔다. ‘6시 공연까지 기다리느라 지쳐있었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동률님이 첫 곡을 부르는 순간,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나에겐 두 번째 콘서트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오른쪽 사이드, 어쩌다 보니 그때와 지금 비슷한 좌석에 앉게 되었다.


“오늘 이 순간을 기다리며 수없이 많은 날들을 꿈꿔왔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만 같았던 바로 그곳에 서 있네.”


여기까지 듣는데 눈물이 흘러넘쳐 마스크를 덮고, 끅끅 소리 내어 울었다.


“깜깜한 무대에 올라서서 떨리는 두 손 꼭 잡고 눈을 감네.

오랜 세월 묵묵히 기다려준 널 만나러 갈 시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긴 터널과 같았던 이십 대, 삼십 대를 거쳐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


 지난 세월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동률님은 공연장에 앉아있는 관객의 마음까지 헤아려서 가사를 쓴 것일까. 공연 동안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내가 이 순간을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 시간 반 동안 나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한꺼번에 느껴졌다.


‘땀으로 온몸이 젖어가고 이제 어느덧 그 끝이 보일 때쯤

빛이 스치는 그곳에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을 봤을 때

나도 몰래 터져 나온 뜨거울 눈물’


 첫 곡이었는데 마지막을 미리 예견한 곡이기도 했다. 퇴장 순간 그는 울음을 참느라 마지막 구절을 흐리게 불렀다. 공연장에 앉아있는 수많은 관객들이 그에게는 각각의 ‘너’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유일한 ‘그’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용기를 얻고 왔다. 다음 공연장에 앉아 있을 내가 보였다. 그때까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로 살아보려고 한다.


 이 곡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렇게 울컥하진 않았다. 노래에 경험이 입혀지니 새로운 대상이 되었다. 이제 ‘The concert’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를 만나서 기뻤는데, 슬프기도 했다. 이 노래를 듣던 과거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하 30층에서 꺼이꺼이 살아가던 시절이다. 그 시간들이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다. 힘듦과 기쁨은 한 몸이었다.


콘서트 마지막에 동률님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조금 더 늙어서 만나요."

이제 늙는다는 말이 다르게 들릴 것 같다.

힘듦도 기쁨도  한 몸으로 이겨낸 시간들이 지나서 만나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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