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티스 Nov 19. 2023

휴식이 필요한 이유

아프고 난 후 생각들


‘아프고 또 아팠다. 끙끙. 어젯밤에 통증이 특히 심해서 뒤척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보다 못한  남편님이 출근길에 한의원 데리고 가 주심. 예상대로 별 뾰족한 건 없고 물리치료 하는 수밖에. 아무래도 올해 책상에 오래 앉아서 몸에 무리가 갔나. 운동한다고 했는데  기말고사 기간즈음 한 달 정도는 1만 보 걷기도 이것도 저것도 안 함. 역시 건강이 먼저다… 다시 마녀체력 책을 꺼내 봐야 할 듯.’ (2018. 11.27 일기 중)

 

그때 그렇게 고생했건만 잊고 살았다. 당시 마녀체력을 읽고 만보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오랫동안 에디터 생활로 책상에 앉아서 일만 하던 저자가 어떻게 운동을 생활화하게 되었는지 글로 보여주는 책이었다.

‘사람은 원래 잘 안 바뀐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쓴 책으로 이 세상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몸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고, 달라진 행동이 생각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인생의 나침반까지 돌려놓고 만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진리를 나 혼자만 터득하고 즐기기엔 너무 아쉽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전혀 늦지 않았다. 남들보다 천천히, 꾸준히 하면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마녀체력>, 12쪽’

마치 아는 언니가 나에게 하는 말인 거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운동해’라고.


 대학원 다닐 때도 혹시나 그때처럼 아프게 될까 봐 걱정했다. 아파보니 그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프기 전에 병원 가서 수액 맞고, 한의원도 다니고 내 돈 내고 대장 내시경까지 했다. 무사히 졸업했건만 지금 이럴 줄 몰랐다. 10월 18일 수술하기 전 담당 선생님이 그러셨다. “한 달 정도는 운동을 쉬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걷기도 필라테스도 포함이라고 했다. 말 잘 듣는 환자인 나는 운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일상에 하는 일은 그대로 했다. 수요일 수술 후  다음 날  목요일은 논문지도를 받으러 교수님을 찾아봤고, 금요일은 상담실에 출근해서 사례회의 참석했다. 토요일은 박사 지도교수님이 될 분의 북리딩 수업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참여했다. 매번 왕복 2시간 넘는 거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건, 일상에서 무리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올해 상반기보다는 지금이 훨씬 여유 있는 일정이었기에 몸에 무리가 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몸이 강철인 줄 알았나 보다. 일요일에는 남편, 아이들과 쇼핑몰에 나들이도 다녀왔다. 그날 오후 낮잠을 자고 난 후부터 몸에 이상이 왔다.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결국 화요일 상담센터 출근해서 뭔가 많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걷는데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들이 그랬다. “선생님! 이 정도로 몸이 안 좋으면 출근하지 말아야지요!” 나보다 주변 선생님들이 더 흥분했다. 그날은 나를 40회기 넘게 상담해 준 선생님이 슈퍼바이저로 상담실에 오시기로 한 날이라 꼭 출근해야 했다. 절뚝이는 다리로 선생님 커피도 챙겨드리고 오랜만에 만나 담소도 나누었다. 선생님은 내 몸 상태를 몰랐기에 그저 꼭 안아주시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셨다. 선생님과 친밀감이 소중했다.


 하지만 소중한 분과 친밀감도, 내가 맡은 일도, 내 몸보다 소중한 건 아니었다. 동료 선생님 한마디가 내 가슴을 관통했다. “선생님이 없어봐야지 우리가 선생님 소중한 줄 알죠!” 상담실에서도 출근부, 회의록 등 사소한 서류뿐 아니라 상담실 배정 등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챙겨서 했다. 결국 몸이 버티지 못했다. 화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끙끙 앓았다. 2018년처럼 말이다. 7시 넘어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서 널고 자려고 누웠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누우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절뚝이던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더 서러워졌다. 김혜남 선생님의 책에서 아파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 소리 내어 울고 나니 조금씩 움직였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도 간절히 움직이고 싶었다. 선생님처럼 소리 내어서 엉엉 울었다. 거실에 있던 남편이, 방에서 공부하던 큰 딸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울면서 대답했다. 그러고 나니 움직일 수 있었다.


 다음 날 2시간 강의를 겨우 진행하고 단골한의원에 갔다. 한의사선생님은 허리 쪽 신경이 눌러져서 그런 거 같다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침 맞을 때 많이 아프다고 했다. 예전에 교통사고 났을 때도 이만큼 아프진 않았는데, 침이 몸에 들어갈 때마다 눈물이 흘렀다. 전날 큰 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웬만해서는 아프다고 안 하는데, 엄마가 울 정도면 진짜 많이 아픈 거야, 아빠.”

 내가 참을성이 이리 좋은 사람인지 몰랐었다. 떠올려보니, 꾹꾹 참으면서 살았었다. 나는 참지 않고 바로 반응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아플 때까지 참았던 거였다. 큰딸의 말 떠올리며, 내가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살았었다. 특히 올해는 1월 이사 나오면서 전세자금을 받지 못해서 8월이 될 때까지 힘들었다. 우리 측 법무사와 연락, 상대측 법무사, 부동산중개인, 전 집주인  등 관련인 모두와 연락하며 때로는 협박으로 들리는 연락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기도 했다. 당시 사설 상담센터 두 곳 수련, 대학교상담센터 출근, 교육지원청 상담, 강의, 심학원 수업, 과제 등 매일 일정이 바쁘게 돌아가기도 했었다.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내 몸은 돌볼 틈이 없었다.

 

몸도 눈치껏 아파주는 것이었을까? 전 집주인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에 전세자금을 돌려주었다. 그 후에 몸에 긴장이 풀어졌다. 그렇게 버티다가 이번 수술은 몸이 힘들었나 보다. 파업을 선언했다. 일단 쉬자 싶었다. 화요일 상담실 출근, 토요일 심학원 오프수업도 쉬었다. 30분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강제로 쉬어야 했다.


 몸도 뇌도 오프 시간이었다. 스스로에게 ‘뭘 하고 싶니?’ 물었다. 우선 애거사 크리스티 영화 시리즈를 다시 봤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 ‘나일 강의 죽음(2022)’,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2023)‘ 1편은 ‘정의란 무엇인가’, 2편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3편은 ‘부모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제로 글쓸거리가 떠올랐다. 몸은 아팠지만 마음이 여유로우니, 영화 속 의미가 느껴졌다. 나의 경험과 지식, 영화의 내용이 섞여서 주제와 방향이 잡혔다. 내가 할 일이 쌓여있었다면, 영화를 깊이 느낄 수 있었을까.


 오늘 아침 6시 30분 눈이 떠졌다. 운동복을 갈아입으려는데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운동가나? 같이 가자.”  장갑에 귀마개까지 장착하고 강가에 산책을 갔다. 예전보다 더 멀리까지 걸었다. 이제는 남편도 나도 2만 보 걷기로 목표가 바뀌었다. 걷는 동안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눈앞에는 하얀 왜가리가 날아다녔다. 두 딸과 함께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속 파란 왜가리가 떠올랐다. 귀로는 새소리가 들리고, 볼에는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남편과는 한 주 있었던 일을 나누었다.


 나에겐 쉬는 시간이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야지 오후에 심학원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예전의 나라면 과제에 치여서 여유를 선택하지 못했을 거다. 남편은 오늘도 걸으며 말했다. “예전에 넌 인생을 숙제하듯 살았어.” 즐겁게 쉰 덕분에 오후 7시 집중해서 과제를 할 수 있다.


 긴장한 채로 멈추지 않고 달려가면 넘어질 수 있다.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면, 나를 잘 데리고 살아갈 수 있다. 불안함은 오히려 줄어들고 더 큰 성장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xels님의 이미지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에 그리던 직장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