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오늘 하루 가장 많이 한 말
2025.1.21 화
“엄마, 한국에 가고 싶어요!”
도요코인 세부 숙소에서 조식을 먹던 중, 아이가 불쑥 내뱉은 말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왜 그러냐고 내가 물으면 대답을 피했지만, 다른 아이 엄마가 물으니 “친구들도 보고 싶고, 영어 공부가 힘들어요!”라고 털어놓았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눈높이 영어에서 배운 몇몇 표현만 집에서 연습해도 칭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는 영어가 식사 후 가끔 먹는 후식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은 주식이나 다름없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상이 영어로 이루어진다. 특히 필리핀의 한 달 어학연수는 스파르타식 프로그램으로 하루 8시간 동안 영어 수업을 진행한다. 4시간은 1:1 수업, 나머지 4시간은 그룹 수업이다. 나처럼 보호자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하루 3시간 모두 1:1 수업이라 그룹 수업이 없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아이의 경우, 수업 시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어진 숙제만 겨우 하고 나갔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어든 것 같지만, 첫째처럼 적극적으로 예습을 하지는 않는다. 첫째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1:1 수업 선생님 중 한 분과는 유독 잘 맞아 그 선생님과 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한다. 덕분에 첫째는 영어 실력이 많이 늘고 있어, 기대했던 성과를 내고 있다. 애초에 어학연수의 가장 큰 목적은 첫째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으니, 이 목표는 순조롭게 달성 중이다.
연수에 함께 온 다른 부모님들은 우리가 어떻게 필리핀 어학연수를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각자 삶에는 다양한 사연이 있듯, 우리도 이제야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간단히 “남편의 바람대로 왔어요.”라고만 대답하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했다. 첫째의 영어 공부. 그래서 둘째는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째의 불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이는 많이 지쳐 보였다. 한국에서는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곳에서는 거의 차단된 상태였다. 유튜브와 만화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자유롭게 놀고 싶은 욕구가 클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언니의 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슈퍼마켓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 한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형제자매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90% 이상이다. 외동이 온 경우는 드물며, 보통 첫째의 영어 공부가 주된 목적이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함께 와 부수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첫째의 영어 공부는 비교적 순조롭지만, 덤으로 온 둘째는 힘들어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첫째와는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 충분히 상의하고, 연수를 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화도 나눴지만, 둘째와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의 입장과 감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둘째의 마음도 잘 돌보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덤으로 알게 된 부분도 있다. 두 아이와 같은 방에서 2주 넘게 생활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집에서는 조용한 편인데, 밖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도 생각보다 컸다.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고, 동생들을 예상보다 훨씬 좋아하며,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반면, 첫째는 생각보다 짜증이 많았고, 혼잣말을 자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카멜레온처럼 금세 적응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째와 앞으로 함께 지낼 날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학교에 가면 어차피 집을 떠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아이들과 붙어서 함께 지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남은 2주 동안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며 더 가까워져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위에서 목표는 단순해야 달성하기 쉽다고 적어놓고는, 또 다른 목표를 덧붙이고 말았다. 이게 바로 나다. 그래도 괜찮다. 나답게,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 한국에 간절히 가고싶어하는 둘째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려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