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영어 선생님이 설명해준 말 중
2025.1.22 월
무지개로 시작한 하루, 그리고 새로운 시작
눈을 뜨자마자 숙소 창밖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오늘도 무지개가 떠 있었다. 두 딸을 불러 함께 무지개를 신기해하며 바라보았다. “어머, 무지개 끝부터 사라지네. 위쪽은 더 선명해져!” 우리는 각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무지개를 봤는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무지개였다. ‘정말 운이 좋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즐거운 아침이었다.
하루 3시간씩 일대일로 필리핀 선생님과 영어 수업을 한 지도 벌써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더듬더듬 단어로라도 영어 대화가 가능해졌다. 오늘은 원래의 단어 수업 선생님이 오지 않아 새로운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했다. 아침에 본 무지개 이야기를 꺼내며 사진을 보여주자, 필리핀 세부에서는 무지개가 흔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출근길이 멀어서 새벽 3시 30분이나 5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새벽 비와 함께 무지개를 보는 일이 자주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무지개를 자주 보지 못하나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특히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는 더더욱 보기 어렵고, 무지개의 끝이 사라지는 모습까지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수업이 끝난 후 문득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렇게 넓고 맑은 하늘을 보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환경, 그리고 미세먼지로 덮인 하늘이 그 이유다. 지금 서울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맑고 푸른 세부의 하늘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척 드문 일이기도 하다. 같은 현상이라도 각자의 경험과 시선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새로운 선생님은 자신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동생을 위해 현재 돈을 벌고 있지만, 언젠가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과거의 아픈 경험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상담사인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한 문장을 영어로 전했다. “나는 고생 총량의 법칙을 믿어요. 과거에 큰 아픔이 있었다면, 미래에는 훨씬 덜할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도 그 믿음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영어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들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 완벽한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대화는 가능하다. 그 용기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첫 단추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부에는 나처럼 가족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이 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보호자 영어 수업을 신청했다. 누군가는 패키지에 포함된 과정이라 수업을 듣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공부를 위해 스스로 선택했다. 또 어떤 분은 처음에는 남편의 권유로 선택했다가 점차 흥미를 느껴서 재미를 붙인 경우도 있다. 하루 3시간의 영어 수업이라는 동일한 상황도, 각자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 본 무지개처럼 말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냥 그런 일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무지개의 빛깔이 다양한 것처럼, 우리의 경험도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빛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지 결정하는 우리의 태도다. 어떤 순간이 흔하든, 드물든,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오늘의 작은 무지개처럼, 앞으로도 삶의 다양한 빛깔을 마주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길을 그려나가길 바란다. 그 길 위에서 오는 갈등과 선택조차도 삶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