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는 것과 시도하지 않는 것의 차이
1월 2일, 이사가 결정되었다. 또 이곳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 여기 이사오기 전에 집을 구입할 뻔했다. 계약 직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결렬되었다. 급하게 이사하느라 비어있는 전셋집을 구해서 급하게 급하게 이사했다.
이사는 나에게 부담이었다. 결혼 전에는 이사를 해 본 기억이 없다. 결혼할 때 내 짐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영역을 한다는 건 두려움 그 자체였다. 결혼할 때 이삿짐을 꾸려온 나를 보더니, 남편은 "이사는 신경 쓰지 마. 내가 할게." 그 이후, 남편이 해주는 거라 생각하고 온전히 맡겨버렸다.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편은 회사일로 바쁠 때도 이삿짐센터부터 에어컨이전, 도시가스, 인터넷, 가구배치 등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다.
정리도 나에겐 부담이었다. 이사 갈 때면, 남편한테 폭탄 잔소리를 들었다. "옷정리할 때는 6개월 이상 입지 않은 것은 버려.", "이거 모아 두었다가 뭐 할래?", "이거 쓸 거야?"........ 그래서 이사하는 시즌이 되면, 불안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혼날지, 언제 남편이 화낼지 몰랐다. 그럴 때면 상황 탓을 했다. '결혼할 때 집을 샀었어야 했는데.', '한 곳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 진짜 부럽다!'
오늘 저녁 8시 20부부터 약 40분 동안 정신과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 선생님께 수치심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수치심에 대한 방어로 4가지 유형이 있었다.
1 유형 : 순응 : 과도한 자기 비하, 자기 파괴적 행동, 잠수 타기
2 유형 : 회피 : 중독, 관계와 도전의 회피 등
수치심 감정 자체를 억압 회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함. 일중독, 알코올중독, 살림중독, 운동중독 등
인간관계, 집단관계 등 하지 않으려고 함. 사회적 상황을 피함
3 유형 : 과잉보상 : 완벽주의, 과도한 독립성, 자기 과시 등
많이 보이는 유형, 사실은 수치심을 느끼고 있지만 정반대인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완벽주의로 나타날 수 있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힘들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음. 나는 근본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허세를 부린다. 돈을 많이 쓰거나, 자신의 능력 과시, 떠벌이, 허풍이 등
4 유형 : 투사 : 분노와 원망, 책임전가
나라는 사람이 형편없다는 느낌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주변의 사람들(가족, 친구들)을 희생양 삼아서 그들을 깔아뭉개 고, 멸시하고, 조롱한다. 나르시시즘이 투사로 나타난다.
수치심을 느끼기 전에 나르시시즘이 주변사람들을 굴복시킨다. 내가 힘 있는 사람처럼 느끼려고 한다.
나르시시즘도 근본적인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은 수치심을 갖고 있는 나르시시즘이 있다.(또 다른 나르시시즘은 어릴 때부터 과잉보호되며 길러짐)
나는 ‘살림을 못한다’는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 이사는 내 일이 아니다.‘라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한 곳에 정착하고 살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라고 남 탓을 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든 것이 수치심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저장강박증 비슷하게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셨다. 그게 미덕인 줄 알았다. 나 또한 비슷한 모습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면 정돈된 깔끔한과는 거리가 있었다. 남편은 두 딸이 그러한 모습을 배울까 걱정했다. 엄마와 나 두 사람다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친정엄마와 친하다. 나보다 더 친밀하게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나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그러한 면이 있을 뿐이지,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이번의 갑작스러운 이사가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 한 건 ‘이사는 가는 게 맞나’ 따져보는 거였다. 딸과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A4용지에 적어내려 갔다. 이사 가면 좋은 것, 좋지 않은 것, 현재 집에 계속 살면 좋은 것 좋지 않은 것. 이사 가면 좋은 것이 월등히 많이 나왔다. 현재 집에 계속 살면 좋은 점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전화해서 약속을 정하고 집을 보고, 계약날짜를 조율하고, 이삿짐센터 몇 군데 전화해서 손없는 날로 가계약을 했다. 인터넷에서 아파트도면을 다운로드하여 프린트하고 현재 집에 있는 가구들의 크기를 재어 도면에 그려 넣었다. 오늘은 이케아에 가서 필요한 가구들을 살펴보고 왔다. 아마도 등은 led로 전면교체가 필요할 거 같아 대략적인 예산을 산출하고 필요한 가전 목록을 적었다. 내일부터는 옷방 정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할 일은 많은데 불안하진 않다. 이 차이었다. 회피했을 때는 불안하고, 힘들었다.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지금은 ‘하면 되지. 실수하면 뭐 이때.’싶은 마음이 들었다. 막상 하면 또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이번에 배워놓으면 다음에 이사할 때 써먹으면 된다. 경험해서 나쁠 건 없다.
수치심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오늘 내가 발견한 방법은 예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보는 거였다.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해면서 말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거 같은 수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