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기만 한 사람도
올해 1월 나의 아저씨를 봤다.
이사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포장이사를 신청하긴 했지만, 책장이 이사 후 한참 뒤에 배달될 거 같아서 거실 책장, 서재 책장을 정리해야 했다. 이사 전에는 옷방이 있었는데, 이사 후에는 각 방에 옷장이 들어갈 예정이라서 또 짐을 싸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버렸다. 손으로는 짐정리를 하고, 눈으로는 드라마 '아저씨'를 봤다.
심리검사 수업을 듣는데, 한 강사분이 꼭 이 드라마를 보라고 권해주었다.
그 후로 약 8개월이 지났다.
내 머릿속에 남은 문장은 이 문장이었다.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나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온전히 만날 수 있을까?
여주인공 이지안(아이유)은 박동훈(이선균)을 도청한다. 한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하루 종일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말을 하며 사는지 알게 된다. 이지안의 시선으로 박동훈의 삶을 엿보는 것이다.
문득 내 가족들의 삶을 내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삶, 두 딸의 하루 생활을 나는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위 문장을 적으면서 내 시선은 내 안이 아니라 바깥을 먼저 향햐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오늘 교수님께 교육분석이 분명한 논문지도를 받고 왔다. 질적연구를 준비하고 있고, 자문화기술지로 쓸 예정이므로 내 삶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필수다.
"00님의 삶에서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나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긴 했나요?"
지난 시간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왔다.
--브런치 서랍 속의 글을 보다가 쓰다만 이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왜였을까?
그녀때문이었다.
드라마 속 이지안의 삶이 그랬다. 그녀 자신의 삶을 살긴 했을까?
할머니를 위해 돈을 벌고, 자신은 폭력에 노출되어도 도망가지도 못하는 삶이었다. 돈을 위해서 거래를 해야 하고,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상사를 배신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정녕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자신을 얼마만큼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을 소중히 여기긴 한 걸까.
몇 개월 지나가고 나니, 장면이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보고 난 직후에 글을 썼어야 했는데.
서랍 속에 딱 저 한 문장만 적어두었더랬다.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오늘 교수님의 어떤 질문에 이 답을 하고 왔었어야 했는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생각을 고르고만 있었다.
깊숙이 서랍에 넣어둔 생각들을 찾고만 있었다.
그리고 온전히 슬픔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나왔다.
일차적 슬픔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느끼고 있다.
슬픔에도 결이 있었다.
이미 출발 전부터 머리가 아팠다.
첫 방문 때부터 더위를 살짝 먹은 상태로 가긴 했는데
오늘 지켜보니 교수님 방에 갈 때마다 몸 상태가 그랬다.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살짝 있었고
가슴은 답답했다.
그래도 이 작업을 왜 하는가?
나는 강한 스트로크(교류분석용어)를 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내 생각들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 글을 쓴다.
오늘은 글루틴 9기 마지막 날이다.
글루틴 2기부터 9기까지 한 달에 20일은 글을 썼다.
1월부터 8월까지다. 160개의 글이 브런치, 블로그에 발행되었다.
내 삶의 조각들이다.
오늘 교수님께 갖고 간 글은 2016년 8월에 기록한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록은 기억보다 선명했다. 어제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성찰일지 A4용지 4장을 썼다. 2016년 8월 비공개 카페에 쓴 자서전 글이었다. 7년동안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글들이다. 사실 다시 볼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다. 이제야 그 글들을 읽을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그 작업을 할 때가 되었다.
사실은 나 자신도 온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말이다.
이렇게 이어갈 수 있는 건 쌓아둔 글들 덕분이다. 글의 힘을 믿는다.
7년 동안 내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그 글들 덕분에 알아차리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보인다.
앞으로 7년 후에도 이 글을 다시 읽고 내 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