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애도
오늘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사실은 이렇게 적고 싶었다. "오늘 교수님과 헤어졌다." 이러한 단어가 맞는 용어인지 모르겠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담당교수와 대학원생 관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졸업하면 그걸로 종료될 수도 있는 관계이기도 했다. 어쩌면 굳이 찾아뵌 이유는 혹시 박사로 진학하게 된다면, 다른 분과 연구를 하겠다고 의논드리러 간 것이다. 교수님과 이야기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의 의미
"애도"라고 하면 장례식, 죽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애도는 좀 더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애도는 의미 있는 대상을 상실한 후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으로,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말한다.
아마도 같은 학교에서 뵙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다른 교수님과 컨택을 하지 않았고, 입시과정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현재는 내가 진학하겠다는 마음만 있다. 이걸 결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우리 교수님이었다. '일단 찾아뵙고 의논하자!' 지나고 보니 부모님께 앞으로를 의논하러 가는 마음이었다. 교수님도 마치 아이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실제 자녀분이 유학을 갔는데, 그때가 떠오르셨나 보다. 교수님 눈빛이 그랬다. 그리고 솔직한 자기 개방으로 어떤 느낌인지 온전히 전달해 주셨다. 그 공기를 감지하자마자 내가 눈물이 흘렀던 거 같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렇고,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먼저 결정하고, 말씀드렸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인가.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교수님을 찾아뵙고 이야기 나눈 시간은 30분 정도였다. 오늘도 햇살이 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교수님 연구실을 처음 찾아뵙던 때도 2월 즈음이었다. 합격자 발표 나고 이후에 컨택을 했다. 그때는 교수님께 언제 어떻게 컨택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일단 학교에서 합격을 시켜줘야 교수님을 찾아뵐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미리 컨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합격발표날 바로 학과사무실로 전화해서 우리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해달라고 전달했다. 그리고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고 찾아뵀다. 학교 캠퍼스에 미리 도착해서 장미가 있는 교내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추위에 장미가 피어나려다 그대로 말라버려 '자연 드라이플라워구나!' 생각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학교 안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건가, 그날처럼 장미가 또 말라있었다.
논문을 쓰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통계작업을 하고 결과가 거의 나왔을 무렵, 엎고 다시 시작했다. 연구모형을 바꾸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구조방정식과 깊게 친구를 했다. SPSS와 AMOS 통계 프로그램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게 될 줄은 이전엔 몰랐었다. 꼼꼼하고 세심하신 교수님 덕분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2차 심사에서 회사에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논문을 쓰던 그 시절엔 마치 부모님처럼 나를 보호해주시기도 했다. 중간에 모형이 바뀌고 했던 과정을 다른 교수님께 설명을 따로 해주신 것이다. 교수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짜 졸업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졸업했다. 지나고 보니 교수님이 보여준 모습이 마치 '부모'와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돌아오는 길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우리 교수님을 인간적으로 특별히 존경하게 된 계기가 있다. 학기 중이었던 거 같다. 교수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날은 소논문 지도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 교수님은 박사과정 선생님과 나에게 따로 문자를 보내셨다. 오늘 부친상으로 인해서 논문미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예정된 일정에 모두 연락했을 거다. 그래도 학생 대표자 한 명에게 연락하셔도 되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챙길 수 있었을까? 그날 이후 우리 교수님에 대한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관점은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교수님은 재학생 및 졸업생의 일체 조문을 받지 않으셨다. 조의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우리 교수님께 한동안 투덜거렸나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님께 했던 행동하고 비슷하게 이어졌다. 너무나도 힘들 때 하소연할 때가 없을 때 그때 교수님께 불평불만이 많았었던 거였다. 나에게 교수님은 부모님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말이다.
교수님은 논문을 빨리 쓰라고 채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 각자의 속도를 기다려 주신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신경을 안 쓰시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깊은 존중이었다.
돌아올 때 눈물이 났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존중'을 가르쳐주신 분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이것이 관계에 대한 애도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지난 시간을 정리하기 위해서 마땅히 거쳐야 하는 과정, 애도.
의미 있는 대상을 상실한 후에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다시 뵐 일이 있을 거 같은데, 그건 새로운 관계로서 시작이니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다.
오늘 온전히 자기 개방으로 지금 이 순간의 심정을 표현해 주신 교수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