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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Mar 06. 2023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 모습을 내가 보기 위해

'두발로 티켓팅' TVing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틈이 나면 설거지를 하며, 과제를 하며 틀어둔다. 힐링이다. 특히 배우 주지훈이 이렇게 잘생긴 배우였나 재발견하고 있다. 네 배우가 뉴질랜드에 가면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하면서 미션을 완수하면 시청자들을 얻은 티켓만큼 여행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시청자와 화면 속 출연자가 티켓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티켓을 받고 여행을 간 사람들의 영상도 중간중간 나온다.


사람은 어디에서 재미를 느끼느냐에 따라 쉬는 시간에 뭘 하는지 달라지는 듯하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이 좋다. 내가 지금 당장 여행을 가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의 풍경을 보여주고, 보는 이도 뭔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끔 하는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여행하는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여행 보내줘야지'하는 생각이 계속 마음속 중심에 잡혀있다. 실제로 신청자들과 출연자들 영상통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출연자들이 힘든 순간이 있어도 넘겨낸다. 한 장면이 떠오른다. 빙하녹은 물에 들어가는 미션이었는데 모두가 뒷걸음질 치는데 여진구가 해낸다. 그 또한 힘들지 않았을까. 춥지 않았을까.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이 행위가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머리로 인지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차가운 물에 온몸을 담근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내가 매일매일 하는 일들이 나중에 무엇을 위함인지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일단 쓴다. 한동안은 '잘'쓰고 싶었다. 글루틴에 참여하면서 느끼고 있다. 일단 오늘의 '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후에는 일단 밤 12시가 되기 전에 떠오르는 걸 쓴다. 내가 '나'와 대화하는데 자기 검열이 뭐 필요하겠는가.(물론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내가 겪은 이러한 감정, 상황 등이 누군가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상담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나를 기록해 둔다면, 그 작업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겪은 두 가지를 기록해두려 한다.


첫 번째, 오늘 심리검사 해석상담을 했다. 처음 듣는 검사가 있어서 주말에 온라인으로 검사진행 후, 오전 10시-10시 30분 사이 해석을 ZOOM으로 들었다. 상담사는 나에게 미리 질문지를 보내주고, 주관식 답변을 요구했다. 질문들을 찬찬히 보니, 검사 결과지에서는 알 수 없는 나의 현재 상황, 생각들을 알아보기 위함인 듯했다. 검사 결과지를 미리 받아서 읽어보는데, 결과보다는 해석상담이 더 와닿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핵심 질문을 했다. 심리검사의 장점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아차리는 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심리검사를 좋아한다.


그 짧은 30분 동안 나의 핵심문제에 다가갔다. 부모님과 관계였다. 최근 애착과 관련해서 여러 책을 읽고 있기도 하고 관심사이기도 했다. 부모님께 꽤 매력적인 강점을 물려받았는데도 나는 그건 애써 무시하고, 양육과정에서 받지 못한 무언가를 발달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나에게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어떠냐고 물었다. 속으로 '헉'했다. 지난 몇 달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올해 1월에 진행한 '버크만검사'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왔는데, 그때는 해석상담하시는 분이 상담하는 분은 아니지만 기업 내 심리검사 결과 해석상담 배테랑이어서 어떤 부분을 건드리긴 했었다.


부모님께서 주신 장점을 잘 닦고, 보살필 시기가 된 것이다. 그랬다.


두 번째, 지난주 상담한 슈퍼비전을 받았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내담자가 나와 비슷한 어떤 부분을 가진 분이 왔다. 교수님께 질문했다. "계속 이렇게 나와 닮은 분만 상담장면에서 만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교수님은 그 질문이 나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으셨던 거 같다. 이상하게 또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이후 몇 번이나 돌고 도는 단어가 '불안'이었다. 내가 상담자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하고 있기에 불안했고, 내담자가 말을 할 때 집중해서 들을 수 없을까 봐 불안했고, 상담자로서 제대로 공감하고 반응해주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바로 불안이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안, 내담자를 믿지 못하는데서 오는 불안이 겹쳐서 예전에 내가 살아온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랬다. 내담자도 불안이 핵심이었다. 자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 자신이 원하는 역할이 아니라 틀에 갇힌 일을 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 등


불안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랬다.


내가 심리검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루었는데, 그 또한 불안이었다. 낯선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일정한 분류를 해둔다면 내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간절히 안전해지고 싶었다. 이런 유형, 저런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한다면 막연히 모르는 이가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에 안정이 되는 것이다. 안전욕구는 사람사이 관계를 개념화시키고 싶어 하기에 심리검사를 좋아했던 거였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사람을 개념화하면 그 사람 실제 그 자체, 구체적 사실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이다. 그랬다. 나는 유형을 나누고 분류를 했지만 한 명 한 명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어떤 유형에 가두고 스스로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쓰기를 한다.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


교수님은 불안을 오픈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는 내담자를 믿고, 상담자 자신인 나도 조금 더 믿어보라고 하셨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불안은 내리고 믿음은 높여보는 거였다.


그랬다.



'두발로 티켓팅' 8회에서 주지훈이 그런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와이너리 포도밭에서 잔디깎는 트랙터를 모는 일이었다. 농장 주인에게 트랙터 사용법을 몇 분만에 배우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제작진들이 처음하는 일인데 두렵지 않냐고 묻자 주지훈이 대답했다.


주지훈 : 무언가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떡하지?'이렇게 고민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일단 해보는거야.

트랙터 몰다가 시동 꺼지면 다시 켜면 되지 뭐.


그는 지레 겁먹기 보다는 일단하고 보는 편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그 배우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나에게 없는 걸 갖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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