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트 화살...' 그 노래 말고
'비나리' 를 검색하면 "큐피트 화살이 가슴을 뚫고 사랑이 시작된 날.." 로 시작하는 심수봉 선생님의 동명의 노래가 더 많이 나온다. 가끔 혼자 불러보다가 너무 절절해서 금방 그만 둬버리게 되는 그 곡.
'비나리' 는 원래 남사당패가 성주풀이 굿에서 외는 고사문으로, 액과 살은 풀어내고 축원과 덕담을 전하는 소리를 뜻한다. 아마 '빈다' 를 어원으로 두고 있을 것이다. 액을 떨쳐주고 축복을 빌어주는 내용이라 그런지 듣고 있으면 중얼중얼 읊는 목소리가 미덥다. 정말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은 상서로운 기분이 든다.
오늘은 아늑한 집에서 뒹굴거리다 그 낮시간이 아까워 집 안 청소를 시작했다.
노동에는 노동요를 뺄 수 없는 지라 혈육의 베이지색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스트리밍 사이트 속 나의 재생목록이 랜덤으로 재생되도록 설정했다. 시아, 레니크레비츠, 최고은, 정재일 등이 번갈아 나와 청소를 도왔다. 소소한 것들을 거두어 치우고 청소기를 막 돌리려 할 때 쯤 김여사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여사가 여름부터 신경쓰던 일이 어제 크게 한 매듭 지어지고, 그녀가 남은 일들을 자분 자분 해나가고 있는 것을 나는 대강 알고 있었다. 하여 청소가 주는 개운한 기분과 함께, 늘 홀로 모든 책임을 이고 산 김여사에게 기운이란 것을 조금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양손을 반짝거리며 김여사를 맞았다. 김여사는 대낮부터 다 큰 애가 왜이러나 갸우뚱하다가 큰 문제는 없어보였는지 당신이 처리한 일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 해주었다. 잘 되었고 또 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조심스런 마음이 들어 나는 대단한 리액션을 할 수 없었다.
그 때 김여사와 나의 대화 사이, 나의 생각과 생각 사이 여백이 있던 공간과 순간에 재생목록 속 [푸리]의 <비나리> 가 들려왔다. 아직 마음을 다 놓지 못한 젊은이의 등 뒤로 동네 어느 어르신이 슬쩍 다가와 아무 것 걱정하지 말라고, 소원하는 것들 다 이루어질 거라고 지긋한 눈을 하고 토닥이는 듯 말이다. 타이밍 보소.
그 든든함에 비나리 속 축원과 덕담이 나와 김여사, 우리 가족의 삶으로 '고대로 옮아왔으면,' 하는 '바람' 이 아닌, 우리 가족의 삶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하고 '믿는 마음'이 불뚝 튀어나왔다. 돈 주고도 못 사는 믿음이란 것이 이렇게 툭 하고 터져나오는 것을 보니. 이것 보소, 비나리가 이렇게 영험하다오.
비나리의 영험함이, 아니 나의 믿음이 나를 내가 원하는 곳으로 잘 데려다 줄 것 같다. 아니 데려다 줄 것이다.
"축원이 갑니다. 덕담 가요, 발원이 갑니다."
2017. 12. 29.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