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 되었다.

by 릴리슈슈

갑자기 유입량이 엄청 늘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 글 중 하나에 달려있는 신부님이라는 키워드를 타고 들어온 것이었다. 최근 일어난 수원교구의 한 신부의 성범죄 때문이었다. 들어오신 독자님들이 기대하거나 예상한 내용이 아닐텐데 어쩌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너무 씁쓸했다. 사람 있는 조직이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이제 모르는 나이도 아니지만.. 게다가 나의 그 글 밑에 달린 추모시는 문제의 고은 시인의 것이다. 아 정말 쓰디 쓰다. 더 씁쓸한 것은 내 블로그다.


글을 써보려고 아주 오랫동안 노력했다. 밤낮없고 주말없던 오랜 회사생활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겨우 한두줄씩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습관을 들이려고 네이버에 블로그를 열었다. 고심 끝에 내가 좋아하던 시의 제목을 따서 블로그의 주소와 이름을 정했다. 메일 주소도 그 시의 제목으로 새롭게 다 바꾸었다. 퇴사 후 삶을 새롭게 재편성하고 싶던 나의 의지이기도 했다. 결정장애자인 나에겐 꽤 큰 일이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오픈한지 1년, 글쓰기 습관을 들인지는 6개월이 되었는데, 갑자기 고은 시인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다.



내 네이버 블로그의 이름은 고은의 시집 제목인 <순간의 꽃> 이다. 주소도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

<순간의 꽃>은 2001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재작년 쯤 알게 되어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읽었었다. 하이쿠나 선시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알맞은 시들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할 말이 없다.


대단한 블로그는 아니지만, 애정을 갖고 써오던 이름이라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라도 계속 이름을 사용해나가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이름은 많은 기억을 불러온다. 기억은 남은 사람을 과거에 살게 한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의지를 보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이름을 고수하며 경계하는 삶을 살 자신이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끔찍한 기억이다. 저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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