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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Mar 09. 2019

"야. 거기 아니야"

선생님 그럼 어디 계세요?

"야. 거기 아니야."


얼마 전 돌아가신 은사님의 수목장에 갔다.

나무 아래 동그랗게 돌로 모양을 만들어 놓았길래, 그 자리인 줄 알았더니 그 옆자리란다. 

1인 1나무인 줄 알았는데, 한 나무에 여섯분을 모시는 시스템이었다.


킥킥대며 웃고는 다같이 절을 했다. 

아이들이 차례차례 올 때마다 정종을 한 잔씩 따랐더니, 정종 한 병이 벌써 다 없어져 간다. 

"야, 선생님 취하신다."

술을 거의 하지 않으셨던 선생님. 분명 취하셨을 것이다.


어디에 살아? 지금 애기가 몇 살이지? 직장은 어디야? 따위의 근황토크에 몰입하다가 말이 끊겼다. 

나는 토크 공백을 메꿔 볼 심산으로 

"선생님이 꿈에 나왔는데_" 하고 말을 꺼냈지만, 말을 꺼냄과 동시에 눈물이 터지는 바람에 도리어 토크 공백이 길어졌다.



*

오랫동안 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삶이 불안정할 땐, 불안해서 찾아뵙지 못했다. 그다음엔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는 동안엔 일 말고는 다른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겨우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사이클에 적응하고, 이만하면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그래서 돌아오는 새해에는 선생님을 한번 뵈어야지 했을 때. 그 새해에.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

장례식장에 갔다.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뻔한 인삿말을 나누고, 벌건 육개장 반그릇을 먹고 나왔다. 주말을 보내고, 출근을 하고, 한달이 지나던 어느날,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가, 뭔가 행사가 있었던가. 친구들이 잔뜩 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아직 안오셨나?' 

그리고 생각이 났다. 

'아. 선생님 안계시지.'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선생님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묻고 싶었던 말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그 말들을 할 사람이 거기에 없어서 울었다. 더이상 말을 건넬 수 없고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울었다. 

내가 자신했던 내 모습을 더욱 북돋워주셨던, 알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나를 감싸주셨던, 내가 가졌던 소소한 재주들을 좀 더 자주 꺼낼 수 있도록 애써주셨던. 선생님이 정말로 없다는 게 그제서야 통탄스러웠다.

베갯잇이 젖도록 울었다.



*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니, 질문을 빌려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잘해왔다고, 앞으로도 잘할거라고, 니가 무슨 걱정이냐고. 어리광인 줄 알면서도 그저 토닥거려주실테니 마음 놓고 칭얼대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없다. 


던지지 못한 질문을 허연 벽에다 대고 내뱉는다. 선생님은 내 질문을 들으셨는지 어쩌셨는지 마냥 웃고 계시는데,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나는 이제 어디에서 답을 듣느냐고 볼멘 소리를 계속 하여도, 선생님은 마냥 웃는다. 나는 선생님이 웃을수록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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