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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머니에 얼른 넣어."
늦가을이었나.
쌀쌀했던 어느 날, 조그만 과자봉지를 주면서 '호'주머니에, 너 먹으라고, 손시려우니까 얼른 넣으라고.
하던 언니가 있었다.
호주머니? 호주머니? 그냥 주머니 말고 호주머니?
"'호'주머니? 와~ 그거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 언니야!"
할머니 댁 달력 같은 오랜 단어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꺼내어 헤링본 무늬의 모직 옷감을 펄럭이듯 우아하게 사용하는 모습에 마음이 멈출 지경이었다.
와, 근데 그 언니가 심지어 나랑 절친이야!
나는 호! 주머니라고 몇 번이나 소리 내 말하며 마음껏 우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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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지나니 온도가 꽤 떨어졌다. 전기장판에 불을 켜는 계절,
옷깃을 여미며 퇴근을 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지난가을 넣어두고 까먹은 돈 만원 정도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호주머니. 그 단어가 튀어나왔다.
호주머니, 를 따뜻하고 묵직한 밤갈색으로 발음하던 언니는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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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 깔깔거릴 것 같았지만 이제 더 이상 같은 계절을 보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많은 이유를 생각해보았지만 가장 알맞은 단어를 찾지 못해서 그냥 주머니에 넣어둔 기억.
"호. 주머니"
입술을 움직여 조그맣게 발음해보았다. 두툼하고 묵직하여 포근했던 저 단어가 이제는 밖에 나온 손처럼 시릿해서 두 번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