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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몸을 일자로 세워서 그대로 입수하세요~"
네? 선생님? 여기 오미터 풀인데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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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수영장에는 오미터 풀이 있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고, 들어갈 일은 한번도 없었으면 좋겠다 했던 그 '오메다' 풀에 갔던 날이었다.
선생님은 몸을 작대기처럼 꼿꼿하게 세워서 그대로 퐁당! 뛰어 들라고 했다.
'아니 선생님, 그렇게 들어가면 더 깊게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마음속으로 물음표를 열개쯤 띄운 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들)를 발견했는지, 선생님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들어가 봐야 겁이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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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야 겁이 안난다잖어.'
선생님을 꽤 잘 믿는 편인 데다 선생님의 어조가 너무 태연하여, 나는 큰 걱정 없이 최선을 다해 몸을 막대기처럼 만들어서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이 일자로 떨어지면, 물속으로 물속으로_ 정말로 한참을 내려간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가면 많이 무섭다는 것도 알았다.
'음? 이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나는 수면 위로 목을 빼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람의 몸이 눈까지는 떠오르게 되어 있어 나도 어찌 눈까지는 수면 위로 올라갔는데, 숨을 쉬어야 하는 코는 여전히 잠겨 있다. 아 나.. 여기서 죽지는 않을 거란 건 아는데, 죽을 것처럼 숨을 못 쉬겠으니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어딘가 잡을 곳을 빨리 찾아 몸을 띄워야 했다.
'아우, 이게 뭐여 새벽부터~'
레인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을 한쪽 걸쳤더니 살겠다.
너 나할 것 없이 레인 한 귀퉁이를 붙잡느라 아우성인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선생님의 유유자적한 표정을 보며 '선생님도 내 형편 봐가며 믿어야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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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영장에는 길이 50미터/깊이 약 1.3미터짜리 일반풀과, 길이 25미터/깊이 5미터 다이빙풀이 있다.
보통 50미터 풀에서 강습을 받으니 25미터 다이빙풀을 헤엄쳐가는 일이 어려울리 없다.
그런데 발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중간에 갑자기 힘이 빠지면? 다리가 안움직이면? 물을 잔뜩 먹으면? 하는 생각이 불고 불어난다. 25미터가 아득히 멀다. 마음이 급해지니 팔다리의 리듬이 엉킨다. 리듬이 엉키면 몸의 중심이 흔들리면서 균형을 잃어버린다. 물 속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물을 먹는다!
"으왁푸!!"
'여긴 발이 안닿아!! 얼른 뭔가를 잡아!!'
수영선생님이 10명 넘게 있는 이 곳에서 죽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당장 발이 안닿는다고 생각하니 마치 죽음이 목전같다. 다급히 벽으로 붙어 두 팔꿈치로 간신히 매달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금방 다시 헤엄쳐갔지만, 그 뒤로 언제 또 다시 오미터 풀에 갈까 싶어 늘 긴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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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난 오미터 너무 무서월"
"그래? 왜 그런 것 같아?"
"발이 안 닿잖어"
"그럼 입영을 가르쳐줄게. 그럼 괜찮을 것 같아?"
"근데 앞도 안 보이잖어"
"앞이 안 보여?"
"앞이 안 보이잖어. 깊어서."
"음?"
나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나보다 먼저 연수반으로 진입한 혈육이 나에게 되묻는다.
"앞이 안 보인다고?"
"그래. 앞이 안보이잖아~"
"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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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수경 좀 갖고 와봐"
문제는 어둡게 코팅된 나의 수경이었다.
혈육의 수경과 비교해보니 선글라스 수준이다. 실내수영장에서 그동안 이걸 용케도 잘 쓰고 다녔다.
"난 미러는 다 이런 줄 알았.."
물안경을 쓰면 눈이 짱둥어 눈처럼 튀어나와 보이는데, 그게 신경 쓰이는 사람들은 미러코팅이 된 수경을 쓰곤 한다. 그러나 미러코팅이 되어있다고 해서 다 어두운 것이 아닌데, 네.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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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알았으니 해결하면 된다.
동공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가볍게 코팅되고, 동시에 시야가 밝은! 밝은!! 밝은!!! 수경을 구입했다.
수경을 싸들고 1.2미터에서 시작해 다른 끝이 2미터로 끝나는 수영장에 갔다. 발이 닿지 않는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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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바닥이 보여!"
앉은 자세로 팔다리를 연신 움직이는 모양이 너무 웃기지만, 어쨌거나 거의 선 상태로 물에 떠 있을 수 있는 혈육이 '바보냐?'라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그를 옆에 두고 나는 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말했다.
"덜 무섭긴 한데 그래도 무섭긴 무서워."
"내려가 보면 안 무서워. 바닥까지 가보자."
"와, 미쳤어. 어떻게 바닥까지 내려가."
"여기 2미터야. 삼십몇 센티만 내려가면 그냥 바닥이야."
"오? 그렇네?"
삼십여 센티만 내려가면 바닥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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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혈육과 숨을 참고 뽀글뽀글 바닥으로 내려갔다.
나 참. 이게 뭔가 싶을 정도로 금세 바닥이다. 바닥에 서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수영장 안은 푸른빛이 가득했고, 천장에서 쏟아져내려 오는 햇살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에 부서져 바닥에 가득 쏟아져내렸다. 머리 위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팔다리를 움직여 이쪽저쪽으로 나아가는데, 고작 삼십 센티 아래의 세상은 아무도 없는 듯 고요했다. 밝은 물안경 속에서 눈을 껌뻑이며 화성을 구경하는 우주인처럼 이곳저곳을 살폈다.
"푸하!"
"별거 없지?"
"와, 디게 조용하다."
금세 발이 닿는다는 사실만큼 저 아래가 끝이 없는 심연이나 해저 괴물이 사는 곳이 아니라 눈부시게 밝고, 고요한 공간이라는 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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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혼자 배운 입영을 대가 없이 자비로이 사사해준 혈육 덕에 그 웃겨 보이던 입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웃겨 보이는데 엄청 어려움 + 웃겨 보이지만 위급상황에 제일 중요함 + 웃을 일 아닌데 그래도 아직 웃겨 보임)
아직 서툴어, 누가 보면 입영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곧 가라앉을 듯 절박하게 몸부림치는 조난자의 모양이지만, 어쨌든 이제 나는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려 5초 간 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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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오메다' 풀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고 맞닥뜨린다면, 내 도망치지 않고 함 해보겠다'라는 마음이 되었다.
이것이 내게는 달에 간 인류의 첫걸음에 비할만하다. 위대한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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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영인에게는 오메다 풀이 허락되지 않는다.
거센 독감 이후로 강습을 나가지 못하는 자유수영인인 내게는 오메다 풀에 들어갈 날이 요원하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을 마음과, 우스운 모양의 입영을 주말마다 진지하게 연습하는 태도라면, 그깟 오메다를 못 들어가겠는가! 내 화성에라도 가지! 핫핫핫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