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적이 없지만 항상 괜찮았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릴 적부터.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내 의견을 말하면 부모님은 언제나 반대하셨고,
'어른이 말하면 따라야지!'라고 말씀하셨다.
어느샌가 내 자아는 내 의견을 말하는 것보단 타인의 말을 수용하는 쪽에 최적화되어 버렸다.
회식 때, 내가 술을 잘 못 마셔도 "괜찮아요."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괜찮아요."
우울해서 곧 죽을 것만 같을 때도 "괜찮아요."
나는 괜찮다고 밖에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술이 괜찮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점심 메뉴가 마음에 들었던 적도 없었다.
기분이 상쾌한 적도, 행복한 날도 없었다.
사람들 눈에는 난 항상 좋다고 말하는 Yes맨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항상 평판이 좋았다.
하지만 나에 대한 평가치가 올라갈수록, 나는 형체를 잃어갔다.
나라는 사람은 점점 흐려지다 못해 없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뭉개졌다.
인생을 살다 보면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들이 곧 잘 오곤 한다지만,
나에게 "I'm fine."이라는 말은 사회생활 외의 범주였다.
나를 표현하는 법을 잊었고, 나를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의사에 반대하는 법을 알았다면...
조금만 더 부모님이 수용적이셨다면.
내가 이렇게 까지 아팠을까?라는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부모님께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나는 오늘도 Yes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