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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제2의 부모였다.

나도 모르게 감싸게 되는 동생.

by 꽃빛달빛

나는 우리 집안의 첫째이자, 맏언니이다.


내겐 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릴 적부터 수술대를 오르락내리락한 동생이기에 부모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이유도 모른 채 동생에게 많은 걸 양보했어야만 했다.


하고 싶었던 것도, 장난감도, 부모님의 걱정과 사랑도.

내겐 있는 듯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용돈도 너무나 적었고,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통금도 또래 친구들에 비해 심하게 짧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학교 수업이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교우관계도 너무나 어려웠고, 돈이라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나를 괴롭혀왔다.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만들기 힘들었고, 만나면 돈이 없어서 문제였다.


내 학창 시절은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 과거가 내게 우울증을 가지고 온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난 웃는 척만 잘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똑같이 아등바등하는 동생이 보였다.


동생이 부족한 게 있으면 부모님이 모르실 것을 알아서였을까.

내 상처가 건드려진 것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동생에게 부족함을 채워주게 되었다.


동생이 혼이 나 울고 있는 날이면 괜히 간식을 사다 주게 되고.

일이 너무 힘들어 절벽 끝까지 몰렸던 날엔 이유 없이 용돈을 주게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이 갈등상황에 있으면 동생 편을 들어주는 건 당연지사,

속상한 동생 속마음을 들어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어느새 난 동생의 두 번째 부모가 되어있었다.


내가 원한 것도, 바랬던 자리도 아니었지만.

맏이었기에, 내가 이미 경험해 본 아픔이었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또 동생이 원망스러웠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나의 사랑이었을 부모님의 관심은 전부 동생에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지금도 그저 동생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언니가 있었더라면.


아니.


이런 세심한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지금의 나는 웃고 있었을까?


현실에선 부모님의 탓도, 동생의 탓도,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지만......

오늘은 마음으로 그저 탓해본다.


내 우울은 오늘도 알아주는 이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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