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운동화를 작은딸이 사주었다.
나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던 세대이다. 다른 아이들은 흰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신을 때 나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반 아이 중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겨울에도 뒤꿈치가 드러나 갈라지고 피가 나던 아이도 있었다. 우리 집도 그 아이 집과 다름없이 가난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불우이웃돕기에서 불우이웃이었던 가난하고 작은 소녀였다. 하지만 그게 가난인지도 모를 만큼 철없던 소녀였다.
자라서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언니와 오빠가 벌어서 남동생과 살다보니 돈쓰는 일이 눈치가 보였다.
고등학교 이 학년 겨울, 언니가 학생 구두를 사라고 돈을 줬다. 삼선교 육교 앞 구두 가게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색 학생 구두를 사서 신었다. 신고 갔던 감색 운동화는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구두를 신었다. 난생처음 신어본 구두에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좋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왕자님도 무도회도 요정 할머니도 없는 신데렐라였지만 신발만큼은 유리구두에 비할 바 없이 마음에 꼭 들었다.
현실은 좀 달랐다. 눈 온 다음 날이라 길은 얼어붙어 있었고 도로와 인도는 유리처럼 반들반들 미끄러웠다. 첫발을 조심히 내디뎠다. 미끈!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육교를 올라갔다. 미끄러지던 구두의 감촉이 아직도 선뜩하게 느껴진다. 운동화를 신었으면 덜 미끄러웠을 텐데 구두가 너무 좋아 동구 여상 언덕길을 미끄덩거리며 어렵게 등교했다. 그래도 마음은 즐겁고 행복했다. 구두 하나에 이렇게 행복하다니 신데렐라의 마음도 그랬을까?
졸업하고 첫 출근날 언니가 사준 웨지 굽의 검정 에나멜 구두. 금실이 수놓아진 그 구두는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게 보이는 것 같다. 싸구려 시장 구두였지만 나에게 너무 예쁘고 편안한 구두였다. 굽 높은 구두는 생전 처음 신어보았다. 구두 굽이 높아서 키가 커진 듯 내 자존감도 쑥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정장이나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딱 펼쳐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나름 고개도 빳빳하게 들고 당당하게 걸어가던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아가씨였던 나. 나의 첫 사회 진출하던 날 신었던 구두여서일까. 그리움처럼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내 기억의 한 귀퉁이에 남아 있는 검정비닐 구두. 구두가 하나뿐이어서 늘 그 구두만 신고 다니긴 했지만, 신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이 걸리곤 했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요정 할머니의 주문이 들어가 있는 구두 같았다.
한동안 두 딸이 같이 돈을 모아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브랜드 운동화는 편하고 좋아서 주야장천 신고 다녔다. 산에 가든 직장에 가든 어디든 신고 다녔다. 굉장히 오래 신었던 운동화다. 운동화가 품질이 좋아 쉽게 망가지지도 않았다.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운동화 밑창이 다 닳아서 매끈매끈해졌지만, 열심히 신고 다녔다. 비 오던 어느 날 대리석 보도블럭을 밟았다가 쫙 하고 미끄러졌다. 다칠 뻔했지만, 다행히 무릎만 슬쩍 스치고 말았다. 운동화는 마음에 들었지만, 안에 깔창도 다 낡아 떨어지고 겉보기에 멀쩡했지만, 신발 밑창이 미끄러워서 더 이상 신고 다니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안녕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작은딸이 월급 탔다고 비싼 운동화를 사주었다.
“엄마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대. 좋은 신발, 발 편한 신발 신어. 오래 서서 일하잖아.”
작은딸이 단호하게 잘 신고 다니라며 계산해 준다.
하지만 운동화가 아까워서 모셔 두었다. 우리 딸들이랑 좋은데 놀러 갈 때 신어야지.
운동화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그 운동화를 신고 얼마나 좋은 곳에 가게 될까. 아이들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겠지만 가족과 즐거운 여행을 이 운동화와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