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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Mar 09. 2023

새봄이다

봄이구나   

  

초등학교 앞 공원

새로 자라난 매화나무 가지에

팝콘처럼 예쁜 봄이 열렸다.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처럼

설레고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처럼

새 가지에서 새로 피어난 꽃이 세상 구경 나왔다

     

얼마나 설렐까

얼마나 궁금할까     

 

궁금함을 못 이겨 싱그러운 한 줄기 바람에

퐁 퐁퐁 꽃봉오리가 터지고 있다

     

봄이구나     

      



아침 일곱 시 집과 가까운 공원으로 운동을 나섰다.

겨우내 누렇게 빛이 바랜 잔디 위에 밤사이 무서리라도 내렸는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서리는 초겨울에 내리는 묽은 서리인데 입춘도 우수도 지나 이제 곧 개구리도 놀래서 깬다는 경칩이 오고 있는데 무서리라니. 손바닥으로 살짝 만져보니 촉촉한 이슬방울이 묻어난다. 아마 밤사이 안개비라도 내린 모양이다.   

  

달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어제보다 좀 더 훈훈하게 느껴진다. 목련도 금방 꽃이 필 듯이 꽃봉오리가 탱글탱글하다. 오랫동안 가물었는데도 봄의 기운을 뽑아 올리기라도 하듯이 나무마다 새순이 피어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터져 오를까? 언제쯤 필까 궁금하다. 이제 곧 새봄의 합창이 퍼질 것 같다.

     

다시 달렸다. 뛰어가다가 나무에 하얀 꽃봉오리가 피어 있는 게 보였다. 다가가 보니 매화나무에 새로운 연두색 나뭇가지가 자라 있었다. 그 가지에 작은 매화꽃이 송이송이 맺혀있었다. 그 사이로 군데군데 만개한 꽃들이 보였다. 반가웠다.

봄 합창의 첫소리를 네가 내었구나. 언덕 위에 있어서였을까?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었는데 하얀 매화꽃이 따스한 훈풍을 담고 피어 있었다. 그 어린 꽃들은 작년에 피었던 꽃이 아니라 이 봄 새롭게 피어나 꽃이다.

어린 꽃이 피어나서 처음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떨렸을까? 겁이 났을까? 신기해했을까? 그 마음이 궁금했다.  


통통 통통 학교 가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경쾌하다. 검은 가방을 멘 한 소년이 “나 잡아봐라.” 하면서 뛰어가지만, 조잘조잘 아이들 목소리에 파묻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아이는 혼자 잔디밭을 내달린다.

봄은 아이들을 뛰고 춤추게 한다. 보라색, 노란색, 분홍색 가방에 달린 노란 블록 하트, 알록달록 꽃 모양과 작은 인형들이 달린 키링들이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교향곡이라도 울려 퍼지듯 초등학교 주변이 활기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화단에 어린 쑥이 자라 있었다.

어릴 때 쑥 뜯으러 언니 오빠들이랑 산에 갔던 기억이 났다.

   

경칩이 지나고 춘분 무렵. 따스한 봄볕에 겨우내 입었던 내복이 근질근질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쯤. 동네 언니 오빠들과 이불 호총이랑 벗은 내복을 커다란 고무대야에 담아서 계곡으로 가곤 했다. 언니들은 흐르는 계곡물에 겨우내 땀에 전 이불 호총과 내복을 빨아서 나뭇가지나 넓은 바위 위에 널어놓았다. 계곡의 찬물은 선뜻하면서도 봄이 오면 손이 아릴 정도로 차갑진 않았다. 빠르게 흐르는 물에 비누칠한 빨래의 한쪽 끝을 잡고 서너 번 만 흔들면 비눗물이 깨끗이 헹궈져서 계곡물에 빨래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지금은 자연보호로 계곡에서 빨래할 수 없지만 오십 년 전에는 가끔 그렇게 빨래하곤 했다.   

   

나들이 겸 산에 가서 쑥도 캐고 무밭에서 작년 가을 추수하고 밭에 버려놓은 작은 무들을 흙 속에서 찾아내었다. 물에 씻은 뒤 입으로 껍질을 깎아 내고 먹었다. 작아서 시원한 맛은 덜했지만 흙 속에서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밭고랑을 다니면 무 찾기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오빠들은 좀 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칡넝쿨을 헤치고 나무 작대기로 칡을 캐어왔다. 수칡은 씹으면 달콤한 물이 나오긴 하지만 암칡에 비하면 먹을 게 별로 없었다. 암칡은 콩 칡이라고 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콩물이 계속 나와 맛있었다. 암칡을 캐기는 쉽지 않았다. 수칡이라도 캐면 찢어서 입에 물고 질겅질겅 껌처럼 씹곤 했다.

     

빨래해서 널어놓고 빨래가 마를 때까지 쑥도 캐고 무도 캐고 질경이와 냉이를 캐서 가지고 간 작은 바구니에 담아서 집으로 왔다. 그날의 수확은 저녁 반찬이 되었다. 냉잇국, 쑥버무리, 질경이 된장국. 아름다운 추억 속의 쑥버무리가 그립다.     



올해 나에게 또 다른 봄이 찾아왔다. 상상하지 못했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봄과 전혀 다른 봄을 기대해 본다. 신기하기도 궁금하기도 겁이 나기도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새봄을 만끽해 봐야겠다. 내년 봄 나는 또 얼마나 달라져 있을지 궁금해지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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