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왔다.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이다. 딱히 결혼기념일을 챙긴 날 보다 안 챙긴 날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기념일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 내가 결혼식장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갈 때도 별 감흥이 없었던 것처럼 이번 달 결혼기념일이 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만 하고 지나칠 예정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구룡령의 그 산나물 비빔밥집이 생각났다.
이십 구 년 전 9월 24일 횡성 시외버스 정거장 근처에 있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었다.
사는 게 바빠 허둥지둥 옆도 안 보고 살았었는데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결혼하기 전 의약학 출판사에 다니면서 자취했었다. 휴일이면 보고 싶은 책 읽고 방 안에서 뒹굴거리다가 읽던 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한밤중에 동네서점으로 달려가 “양들의 침묵”을 사다 읽기도 하고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날밤 새우며 읽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작은 행복들로 가득 찬 생활에 푹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고 십이 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식 전날 강원도 횡성 작은 호텔에서 친구들과 결혼 전야를 보냈다. 근처 마트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다가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수다 떨던 때가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다음 날 새벽 시골 동네의 허름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올리고 난생처음 얼굴 마사지를 받았다. 안경 대신 하드렌즈를 끼고 신부 화장을 했다. 안경 쓰고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속눈썹 화장을 하면서 미용사가 렌즈를 낀 눈에 화장품이 들어가면 몹시 아플 수 있다고 했지만, 렌즈 낀 채 화장했다. 렌즈 낀 눈도 어색하고, 굽 높은 슬리퍼도 어색하고, 드레스도 어색했다. 남의 옷을 입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화장을 하고 결혼식을 하는 것 같았다. 신랑은 흰색 양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원래 땀이 많은 터라 그렇기도 했지만 여느 해 보다 더운 날씨에 긴장으로 인해 나도 땀이 났다. 주변에서 입장하세요, 절하세요, 웃으세요. 꽃다발 던지세요, 퇴장하세요, 하라는 대로만 하는 꼭두각시 연극처럼 어설픈 결혼식을 치르고 양양에 있는 호텔로 신랑 친구 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가는 길에 활짝 핀 보라색 나팔꽃이 처연해 보이고 서른네 살의 늙은 신부는 등 떠밀리듯 떠났다.
제주도 여행지까지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어 민속박물관에 들러 구경하고 구룡령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나뭇잎,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예뻤다.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갔다. 길이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차도 헐떡이며 올라갔다. 산 위로 올라 갈수록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올라갈수록 길이 험해 무섭기도 하고 멀미도 났다.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시원한 바람과 안개인 듯 구름인 듯 밀려오는 운해 사이사이 보이는 먼 산봉우리들은 종일 힘들었던 피로를 날려주고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구룡령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아흔아홉 구 비가 용이 지나간 것처럼 구불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의 유래를 두고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의 용들이 잠시 쉬어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 또 하나는 고개가 용이 승천하는 듯 아흔아홉 굽이라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높이는 해발 1,013m이며 국도 56호선과 백두대간이 통과한다. 정상 부근 빛 공해 지수가 국내에서 손꼽을 정도로 매우 낮은 지역으로 겨울에 많은 별들을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고 또한 여름에 날씨가 좋으면 은하수 관측도 가능하다. 전 구간이 주행로가 U자 모양으로 급하게 구부러진 여자 머리핀을 닮았다고 하여 헤어핀커브라고 불리는 곳이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굽이굽이 올랐다가 고개 넘어 내려가는 길은 더 아찔했다. 멀미로 정신이 없었다. 거의 다 내려와 작은 음식점에 들렀다. 화장실에서 얼굴에 찬물을 적시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결혼식 치르느라 아침도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신 빈속에 멀미까지 하고 나서 먹는 매콤한 산나물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다시 차를 차고 양양 낙산 비치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밤바다로 나갔다. 가을바람,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면서도 짭짜름한 소금 냄새, 바닷물 내음이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온 신랑 친구와 신랑은 밤이 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새벽이 되어서야 호텔에 들어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생각해야 했는데 영화를 보듯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다음날 양양에서 신랑 친구차를 타고 다시 속초로 나와서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에 가야 하는데 속초 비행장에 제주도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 서울 김포공항에 와서 다시 제주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차와 비행기만 수 시간 타고 제주 서귀포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근처 정방폭포를 구경하고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제주도 관광을 시작했다. 택시 기사가 사진 찍어서 앨범을 만들어 보내 준다고 했다. 야외촬영을 따로 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택시 관광을 시작했다. 사진 찍는 것과 관광을 같이 하다 보니 거의 끌려다니며 사진만 찍느라 바빴다.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다리만 아팠던 기억이 난다. 바닷가 언덕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은 택시 기사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했지만, 피곤한 표정은 힘들고 지친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게 3박 4일 짧은 여행을 마치고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어머니도 안 계시고, 언니, 오빠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당장 이바지 음식 해줄 사람이 없어 내 손으로 어설프게 만들어 선물과 함께 시댁으로 갔다. 어머님은 스테인리스로 된 커다란 대야에 따스한 물을 담아주시며 씻으라고 하셨다. 바깥이나 다름없는 부엌에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었다. 어머님은 새 손님이라고 설거지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라 하셨다. 사랑방은 시아버님께서 넣어주신 장작불로 인해 방이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두꺼운 솜이불을 깔았는데 한증막하는 느낌이었다. 밤새 천장에선 후다닥후다닥 쥐들이 달리기 하였고 쥐가 떨어질까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났다. 사랑방 옆 장작 쌓아 놓은 곳에 짚이 깔려있고 밤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꼬물꼬물 어린 고양이들이 대여섯 마리가 어미젖을 빨고 있었다. 그렇게 혼례를 치른 지 삼십여 년이 되어간다. 결혼하기 전 자유롭던 나의 삶이 그리고 구룡령의 이름모를 음식점에서 먹던 산나물 비빔밥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