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현경 May 29. 2023

눈물보다 짠 김밥

김밥 아르바이트





김밥은 맛있다.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묵은지가 아삭아삭 씹히고 참치와 마요네즈의 하모니가 입안에서 회오리칠 때, 단무지의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불고기가 있으면 불고기 김밥, 참치를 넣으면 참치김밥, 맛 또한 다양해서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김밥이다. 남으면 냉장 보관했다가 계란을 입혀 구워 먹어도 맛있다. 


요즘 분식집 김밥 한 줄에 사천 원, 참치김밥은 오천 원이다. 지갑 열기가 무섭다. 요즘 김밥값을 보니 나도 김밥 장사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장사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좋아하던 김밥을 한동안 싫어했던 적이 있다. 김밥을 먹으며 울어 본 적도 있다.   

  

강서구로 이사하면서 강북구에서 하던 일식 가게도 같이 이사를 했다. 비싼 월세와 관리비가 부담스러워 많이 망설였었다.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대학병원이 들어서면 고객 또한 많아질 것이라는 부동산 사장 말만 믿고 전철역 앞 가게를 계약했다. 가게를 개점하고 보니 새로 짓고 있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은 일식집보다 삼겹살집으로 많이 갔다. 초밥과 회 그리고 덮밥을 팔았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았다. 대출받아 월세를 냈다.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고, 장사는 안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권리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뭐라도 매출을 올릴 새로운 상품을 생각해야 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김밥 장사를 하기로 했다. 갑자기 김밥 장사를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알바 구하시나요? ”    

새벽 장사하는 김밥집에 취직했다.

어깨너머로 김밥용 밥을 만드는 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와 밥은 어떻게 만드는지 배운 뒤 김밥 장사를 시작했다. 야채 김밥을 만들어 오전 여섯 시 반부터 한 줄에 이천 원씩 팔았다. 며칠 동안 김밥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마다 김밥을 만들어 쌓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처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힘을 짜내 “김밥 이천 원입니다.” 소리쳤다. 사람들은 쳐다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갔다. 며칠 만에 한 개가 팔렸다. 김밥값 이천 원을 들고 남은 김밥을 먹으며 울었다. 목이 메었다.      


동쪽으로 난 창문에서 유월의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벽부터 숨이 턱턱 막히게 뜨거웠다.  혹 머리카락이라도 들어갈까 싶어 모자를 쓰고 땀이 줄줄 흘렀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김밥을 만들어 팔았다. 비닐장갑을 끼고 뜨거운 밥으로 급하게 만들다 보니 손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단체주문도 늘고 매일 와서 줄 서서 사 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홉 시까지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김밥을 만들어 팔고 나면 기운이 쑥 빠져 버렸다. 매일 김밥을 팔고 남은 김밥을 먹으며 이년 가까이 버텼지만, 빚만 잔뜩 지고 가게에서 물러났다.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인생 공부를 했다.  

   

오랜만에 찬밥이 남아서 찜기에 쪘다. 당근 채를 썰어 우동 다시나 소금 간을 해서 볶으면 달큼한 맛이 난다. 오이가 있으면 길게 썰어 소금과 설탕에 재워놓거나 시금치를 끓는 물에 일 분 정도 살짝 데친 후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해 사용한다. 묵은 김장 김치는 포기 채로 꺼내 길게 반으로 자른 뒤 양념을 털어내고 물에 살짝 씻어서 꼭 짠 뒤 참기름과 설탕으로 양념해 놓는다. 캔 참치는 체에 밭쳐 물을 빼고 마른 팬에 볶아 수분을 날린 뒤 마요네즈를 섞어둔다. 계란은 여섯 개 정도 볼에 깨어 넣고 소금과 맛술, 물을 조금 넣고 세차게 휘핑 한 뒤 체에 걸러 팬에 두툼하게 부친다. 어묵도 길게 썰어 뜨거운 물에 데치고 간장과 맛술을 넣어 살짝 볶아놓는다. 맛살이 있으면 맛살을 넣고 없으면 패스. 깻잎도 씻어 놓는다. 찐 밥에 소금과 깨, 참기름을 넣고 살살 섞는다. 재료 준비가 다 되었다. 김발 위에 김을 펴고 최대한 밥을 얇게 편다. 김치와 단무지, 오이나 시금치, 계란지단과 어묵, 깻잎을 깔고 참치를 길게 가운데에 놓고 김발을 꾹꾹 눌러가며 김밥을 만다. 만들어진 김밥에 참기름을 조금 바르고 잘 드는 칼로 단숨에 쓱쓱 자르면 깔끔하고 맛있는 김밥이 만들어진다. 

     

오랜만에 먹는 김밥은 맛있지만, 세상에 쉬운 건 없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수고했다고 따스하게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어려움을 참고 묵묵히 자영업을 하시는 많은 사장님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전 12화 나 때는 이렇게 김장했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