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밖을 내다보니 구름 같은 흰 눈이 나무마다 지붕마다 내려앉아 있었다.
눈발이 살짝 흩날리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장으로부터 수레바퀴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이른 아침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시는 분이 다녀갔나 보다. 부지런하시다.
한 장의 그림처럼 발자국 하나 없는 아파트 놀이터가 아름다웠다. 어떤 아름다움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라가긴 힘든 것 같다. 눈 온 날이면 마음도 덩달아 조용하고 차분해진다. 모든 공기가 땅 위로 내려앉아 바람마저 멈춘 것 같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작은 새의 몸짓이 난 분분 난 분분 꽃잎 같은 눈을 흩날린다.
어릴 적 오빠와 물이 얼은 논에 썰매 타러 갔었다. 오빠가 몇 날 며칠 걸려 썰매를 만들었다. 나무꼬챙이에 못도 박아서 멋지게 썰매가 준비되었다. 눈이 오고 물이 얼어붙길 기다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썰매 앞에 앉고 오빠는 뒤에 앉아 두 개의 꼬챙이로 썰매를 운전했다.
신나게 전진하다 벼그루터기에 부딪쳤다. 내가 앞에 앉아 있어 오빠가 논에 있던 벼 그루터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나동그라졌고 나는 벼 그루터기에 턱이 찢어져 피가 흘렀다.
당황한 오빠는 누군가의 손수건으로 상처를 싸맨 뒤 업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는 병원에 가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찢어진 턱을 붕대로 감고 나을 때까지 소독했다.
턱이 아파서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겨우 내내 죽만 먹으며 보냈다.
교회 언니들이 사과를 사서 왔었는데 엄마가 숟가락으로 사과를 긁어서 먹여 주었던 기억이 난다. 부드럽고 달콤한 사과를 보면 숟가락을 든 엄마 손길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밤새 폭설이 내려 50cm가 넘게 눈이 쌓였다. 그때는 눈이 많이 왔었다. 교문을 들어서자 하얀 눈 사이로 길게 난 길이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 생각났다. 그 길을 따라 교실로 갔다. 벽처럼 쌓인 눈을 보며 눈의 요정 나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눈싸움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언니가 내게 학생 구두를 사주었다.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우리 학교는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새 구두가 너무 미끄러워 엉금엉금 기다시피 학교를 갔었다. 그날 다리에 힘을 주어 걸었던 탓에 다리가 아팠지만, 구두가 망가졌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십 대 중반 친구와 춘천 오봉산에 놀러 갔다. 그때는 산에서 취사도 가능했을 때였다. 눈이 많이 온 날 배를 타고 오봉산 입구에 내려 올라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올라가기 힘들었다. 바위가 있는 곳에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눈을 파서 땅을 다진 뒤 버너에 불을 붙였다. 코펠에 물을 담아 가져온 라면을 끓였다. 눈이 많아 편히 앉을 수가 없었다. 눈 위에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먹었다. 날은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산속에서 먹는 라면은 정말 맛이 있었다. 눈 속에서 먹었던 라면은 따끈하고 맛은 일품이었다. 산에 오르지도 못하고 몸만 녹이고 다시 내려왔다.
몇 년 전 제주도에 가족 여행을 갔었다.
돌아오기 하루 전날 일정에 없던 한라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예정에 없이 갔는데 산에 눈이 많이 와 길이 미끄러웠다. 산에 오를 생각은 아니었는데 눈을 보고 다들 홀렸었는지 아이젠도 없이 산을 넘었다. 올라가는 길은 곳곳에 밧줄이 난간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그 줄을 잡고 백록담 근처까지 올라갔다,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눈 덮인 나무숲은 끝도 없이 백록담 근처까지 펼쳐져 있었다. 눈의 궁전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무숲을 지나고 나자, 뭉게구름이 산을 감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구름 위로 걸어서 올라가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은 험난했고 미끄러지면서 팔을 다치고 말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더 가고 싶은 곳이다.
눈 온 날의 추억 속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같이 떠올라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눈 온 날 아침처럼 온 세상 밝고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