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가끔 궁금할 때가 있었다. 나조차도 잊어버려서 희미한 흔적만 남은 것들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많은 것들이 너무도 쉽게 과거가 되어버려서 순간순간이 의미 없게 느껴져 버린 날들이 잦았다. 어차피 지나고 나면 흔한 기억 중 하나가 되어버릴 텐데 왜 굳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에 도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도한 열 가지 중 곁에 두고두고 남는 것은 한 두 가지뿐인데 왜 스쳐 지나갈 것들에 마음을 써야 하는지, 나는 정말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닫고 벽을 쌓는 건 순간이었다. 스쳐 지나갈 그저 그런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았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많은 것들을 시도하던 지난날들이 흑역사가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기억을 두고두고 더듬는 버릇이 있다. 오랜 버릇과 습관으로 그저 어린 날의 섣부른 들뜸으로 치부했던 것들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기억과 경험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걸 어떻게 소화해내는지는 온전한 나의 몫이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시작했던 새로운 분야의 도전은 비록 얄팍한 깊이였지만 시각을 넓혀주었다. 아주 작은 경험으로 인해 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를 희석할 수 있었다. 적어도 0보다는 1이 나았고 작은 1들이 모여 나는 꽤나 달라졌다. 세상에는 도전할 만한 일이 너무나도 많고 나는 언제든지 목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무언가를 시작해 버린 삶은 그 전의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나는 소모적인 것들이 싫고 아무것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물질적인 것들은 아닐지라도 있었던 것들은 어떻게든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내게 있다. 그대의 속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 이 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면,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낭비해 버린 것만 같다면 섣부르게 절망하는 대신 차분하게 곱씹어보는 게 어떨까. 시간, 순간, 경험들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는 언제든 그 속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릴 수 있다. 상처와 우울은 그냥 두고 작더라도 반짝이는 것들만 골라서 건져 올리면 된다. 지나간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