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니 Jan 23. 2022

아인슈페너를 아시나요?

사람은 변하면 피 본다.

   카페에 가면 주로 바닐라 라떼를 시키는 버릇이 있다. 바닐라 라떼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든 단 커피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드라마 속 멋진 커리어우먼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던데, 내 출근길은 언제나 바닐라 라떼와 함께다. 그런 내가 ‘아인슈페너’라는, 이름부터 어렵고 난해한 커피를 주문하는 아주 낯선 일을 감행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자주 가던 카페에서 평소처럼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려다가 아인슈페너에 시선을 뺏긴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인슈페너가 뭔지도 모르면서 왠지 주문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점원분께 아인슈페너가 뭔지 물어보자 커피 위에 크림이 올라가서 크림과 커피를 같이 마시는 음료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커피와 크림을 같이 마신다’라. 단 커피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법한 메뉴였다. 더는 고민하지 않고 아인슈페너를 주문하는 패기를 선보였다.


   진동벨이 울리고, 드디어 등장한 나의 아인슈페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느낌의 비주얼이었다. 크림이 이렇게나 많다고? 맨 위에 보이는 하얀 크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크림은 컵 아래까지 이어져 컵의 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흐음. 이건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한담.


   한참 고민을 하다 검색 찬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촌스럽게도 검색창에 ‘아인슈페너 먹는 법’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 크림 덩어리의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지 알게 되었다. 섞지 않고 그대로 마셔서 크림과 밑의 커피를 동시에 같이 먹어야 한다나. 입 안에서 크림과 쓴 커피가 섞이며 공존하는 게 아인슈페너의 매력이라고들 하던데. 크림은 너무 크리미하고 커피는 너무 쓰기만 하고. 나는 도통 아인슈페너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어떤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한 번 먹어보면 계속 이것만 먹게 된다던데. 내 첫 아인슈페너 경험은 두 번째는 없다고 강렬히 소리치고 있었다. 검색창이 시킨 대로 섞지 않고 크림과 커피를 동시에 먹기를 몇 번. 내 입은 이건 정말 아니라며 아인슈페너를 거부했다. 하. 다 남기느니 그냥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자. 내 느낌은 차라리 크림과 커피를 섞으면 좀 더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마침 아인슈페너와 함께 작은 스푼도 함께 나온 터. 크림과 커피를 살살 섞어주는데 이 놈의 낯선 커피는 심지어 잘 섞이지도 않는다. 누가 보면 아인슈페너를 섞어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나를 세상 촌스러운 사람 취급할지 몰라도 아무렴 어때. 그래도 난 크림과 커피를 섞은 게 더 나았다.


   반 정도 마시니 원래 마시던 바닐라 라떼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걸쭉한 커피는 내 갈증을 해소해주지도, 시원한 목 넘김을 선물해주지도 못했다. 젠장. 왜 이름이 ‘아인슈페너’여서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거야. 그냥 크림 커피 같은 거였으면 궁금하지도 않았을 텐데. 괜히 아인슈페너를 원망하다가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사람은 변하면 안 된다는 거. 앞으로는 메뉴판 따윈 보지 않고 뚝심 있게 어디서든 바닐라 라떼만 주문해야겠다.


문제의 아인슈페너


매거진의 이전글 이젠 주인공이 아닌 삶도 연습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