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면 피 본다.
카페에 가면 주로 바닐라 라떼를 시키는 버릇이 있다. 바닐라 라떼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이든 단 커피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웬만하면 마시지 않는다. 드라마 속 멋진 커리어우먼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던데, 내 출근길은 언제나 바닐라 라떼와 함께다. 그런 내가 ‘아인슈페너’라는, 이름부터 어렵고 난해한 커피를 주문하는 아주 낯선 일을 감행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자주 가던 카페에서 평소처럼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려다가 아인슈페너에 시선을 뺏긴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인슈페너가 뭔지도 모르면서 왠지 주문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점원분께 아인슈페너가 뭔지 물어보자 커피 위에 크림이 올라가서 크림과 커피를 같이 마시는 음료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커피와 크림을 같이 마신다’라. 단 커피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법한 메뉴였다. 더는 고민하지 않고 아인슈페너를 주문하는 패기를 선보였다.
진동벨이 울리고, 드디어 등장한 나의 아인슈페너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느낌의 비주얼이었다. 크림이 이렇게나 많다고? 맨 위에 보이는 하얀 크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크림은 컵 아래까지 이어져 컵의 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흐음. 이건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한담.
한참 고민을 하다 검색 찬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촌스럽게도 검색창에 ‘아인슈페너 먹는 법’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 크림 덩어리의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지 알게 되었다. 섞지 않고 그대로 마셔서 크림과 밑의 커피를 동시에 같이 먹어야 한다나. 입 안에서 크림과 쓴 커피가 섞이며 공존하는 게 아인슈페너의 매력이라고들 하던데. 크림은 너무 크리미하고 커피는 너무 쓰기만 하고. 나는 도통 아인슈페너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어떤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한 번 먹어보면 계속 이것만 먹게 된다던데. 내 첫 아인슈페너 경험은 두 번째는 없다고 강렬히 소리치고 있었다. 검색창이 시킨 대로 섞지 않고 크림과 커피를 동시에 먹기를 몇 번. 내 입은 이건 정말 아니라며 아인슈페너를 거부했다. 하. 다 남기느니 그냥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자. 내 느낌은 차라리 크림과 커피를 섞으면 좀 더 나을 것 같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마침 아인슈페너와 함께 작은 스푼도 함께 나온 터. 크림과 커피를 살살 섞어주는데 이 놈의 낯선 커피는 심지어 잘 섞이지도 않는다. 누가 보면 아인슈페너를 섞어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나를 세상 촌스러운 사람 취급할지 몰라도 아무렴 어때. 그래도 난 크림과 커피를 섞은 게 더 나았다.
반 정도 마시니 원래 마시던 바닐라 라떼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 걸쭉한 커피는 내 갈증을 해소해주지도, 시원한 목 넘김을 선물해주지도 못했다. 젠장. 왜 이름이 ‘아인슈페너’여서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거야. 그냥 크림 커피 같은 거였으면 궁금하지도 않았을 텐데. 괜히 아인슈페너를 원망하다가 한 가지 교훈을 얻는다. 사람은 변하면 안 된다는 거. 앞으로는 메뉴판 따윈 보지 않고 뚝심 있게 어디서든 바닐라 라떼만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