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를 추모하며

이 모든 게 지나갈 때까지

by 윤사강

얼마 전 한 무명 배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 제목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며칠 후 우연히 다시 그 기사를 보게 된 나는 그녀가 나와 동갑이며 우리는 같은 대학교 출신이고 심지어 같은 교양을 들었던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사로 접하는 일은 언제나 상념을 동반했지만 그녀의 죽음은 조금 달랐다. 언젠가 한 순간 접점이 있던 사람의 죽음이라니. 그녀를 잘 알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학 시절의 그녀는 항상 밝고 빛나서 유난히 눈에 띄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아직도 기억하는 내가 그녀에게서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단념하는 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언론에 공개된 그녀의 유서를 읽어보았다.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지만 괜히 그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담담하게 쓰여진 글자들이 참담했다. 누군가의 유서를 읽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었나. 밝던 그녀가 죽음의 순간에 내몰리기까지 그녀의 삶은 얼마나 험난했을까. 누군가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면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지가 떠오르며 견딜 수 없이 슬퍼진다. 그건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소식을 보았을 때도, 어느 애정 하던 아이돌 가수의 소식을 보았을 때도, 그리고 대학 교수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처음 누군가의 자살에서 충격을 받았던 건 어느 남자 아이돌의 죽음에서였다. 그날도 그의 노래를 들으며 지하철에 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가끔 그의 라디오를 듣기도 했고 자주 그의 노래를 들었다. 팬클럽까지 가입하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종종 삶의 위로를 받아왔던 나였다. 그날 밤은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난 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폐쇄병동에 입원할 만큼 심한 우울증을 앓았고,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결코 모르지 않는다. 감히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유서를 적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안다. 부끄럽지만 나도 한때 적어보았으니. 결코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다. 하루하루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일분일초 숨 쉬는 게 버거운 시절도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아내서 글도 쓰고 평범한 회사원도 되었다. 물론 여전히 아침과 자기 전에는 꼬박꼬박 약을 먹는 처지이지만 이젠 제법 살만하다는 글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철옹성 같은 우울의 파도도 언젠가는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있다. 지나고 나면 그제야 알게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의 진가를. 물론 마찬가지로 지나기 전엔 모른다. 이게 언젠간 정말 지나가리란 것을. 나 역시 그랬다.


마음이 아프면 병원에 가자. 약도 먹고 상담도 받자. 그걸로 안된다면 입원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다고 마음이 금방 깨끗하게 낫는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약을 찾는 과정도 필요하며 잘 맞는 상담사와 주치의를 만날 때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면 지금 당장 어디든 도움을 요청하자. 그리고 버텨보자. 이 모든 게 지나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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