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시절이 되고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는 골목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10월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그레이 크림이 잔뜩 올라간 초코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취향에 제법 부합하는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창가에 앉아 나른해지는 찰나를 감각했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 마음만 먹으면 의자 위로 살짝 떠오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느낀다.
트랙이 바뀌고 몽환적으로 흐르는 선율이 듣기에 꽤나 좋았다. 요즘 즐겨 듣는 검정치마의 음악이 나온다면 정말 마음에 드는 카페가 되리라. 병동에서 퇴원한 직후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폴 킴이나 스무 살의 음악을 좋아했다. 모든 밤들이 불면으로 점철되었던 나날들. 그들의 음악을 듣던 날들은 하나의 시절로 남았다. 외면하고 싶었던 시절. 그 음악들에는 미처 끊어내지 못한 내 지난한 밤들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과거가 저절로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것들은 침전물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음악을 들을 때, 트리거가 되는 무언가를 만날 때 다시 살아나 나를 끝없이 과거에 옭아맸다. 한때는 그 시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에피톤 프로젝트와 폴 킴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했다. 음악을 삭제하며 마치 그 시절도 삭제할 수 있다는 듯이 나는 태연하게 굴었다.
듣지도 않던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노래방에서 애창곡으로 부르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의식적으로 피할 때보다 노래방에서 소비할 때가 훨씬 더 행복했다. 과거는 외면할수록 더 자꾸 오는 것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노래방에 갈 때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부르며 그 시절을 조금씩 희석하고 있었다. 자꾸 마주할수록 더 단단해졌다.
주문한 얼그레이 초코 케이크가 달았다. 새로 입은 아이보리색의 뽀얀 가디건 소매에 케이크 크림이 조금 묻었다. 우습게도 그 순간 검정치마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하얀 마음 때 묻으면 안 되니까 사랑해줘요.’
어렴풋이 느낀다. 검정치마의 음악 역시 하나의 시절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또 하나의 시절을 통과해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