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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에 눈물이 난다면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나를 발견한다

by 이도연 꽃노을





가을빛 완연한 날, 난 또다시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고 싶어졌다. 얄팍한 허리 힙쌕에 아이폰과 신용카드 한 장을 떨렁 넣고 이어폰을 끼고 탄천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 탄천을 걷었던 날들은 여러 번 있었으나 늘 같은 구간에서 돌아오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 다리가 아파서 다시 돌아오기도 힘든 곳까지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갔다가 집에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카카오 택시라도 잡아 타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신용카드 하나를 챙겼다.



익숙한 풍경들을 넘어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풍경은 낯설지만 가을이 선물해 준 단풍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 홀딱 반해 나는 계속 걸었다. 끝이 날 것처럼 좁아지던 길을 돌아서 나오면 야외 수영장도 있도 반려견 놀이장도 나왔다. 애플 와치를 힐끗 보니 5킬로 정도 집에서 걸어온 것이었다. 돌아가려면 또 다른 5킬로를 걸어야 하니 평소 왕복 4킬로 정도만 산책하던 날과는 분명히 오랫동안 걸었는데도 내 다리는 지치지 않았다. 신기하면서도 땀이 날듯 말 듯 한 날씨에 까슬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알고 있는 네이버 본사가 보였고 난 네이버 본사 앞을 지나 더 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떨어졌고 어떤 나뭇잎은 우연히 나의 머리에 맞고 떨어졌다. 머리에 맞고 보행로에 떨어진 낙엽을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20여 년 전 화창한 날에 낙엽을 맞으며 목백합 나무 아래 앉아서 울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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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난 불편하고 불안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엄마가 보낸 점심 월식 배달 업체에서 도시락 배달원이 교실 밖에서 내 이름이 적힌 도시락 한 개를 들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여고에 오토바이 헬멧을 쓴 도시락 배달 업체 남자 직원은 단연 눈에 띄었다. 지금이야 도시락 체인 업체도 많고 도시락 배달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점심에 도시락이 배달되어 그 도시락을 먹는 학생은 전교에 나 하나뿐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매일 내 도시락에 어떤 반찬이 올지 기대했다. 급식을 하지 않던 그 시절에는 친한 친구들끼리 책상을 붙여 놓고 도시락을 먹곤 했다. 친구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싸준 매일 비슷한 반찬보다 내게 매일 배달되는 사제 도시락 반찬에 관심이 많았었다. 나는 그렇게 3년을 내리 도시락 업체에서 점심시간에 맞춰서 배달이 되는 도시락을 먹었다.


어떤 날은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도시락만 받아서 친구들에게 주고 난 목백합 나무가 심어져 있는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엄마는 내가 점심을 안 먹는 게 신경이 쓰여서 도시락 배달 업체에 특별히 부탁해서 학교로 배달을 해주었던 것을 알지만 난 그게 너무 창피했다. 도시락을 안 싸와서 못 먹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속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내가 좋아했던 이정하 시집이나 서정윤 시집을 들고 목백합 나무에 앉아서 나는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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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시 >>


서정윤



술로써

눈물보다 아픈 가슴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적는다


별을 향해

그 아래 서 있기가

그리 부끄러울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읽는다


그냥 손을 놓으면 그만인 것을

아직 <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쓰러진 뒷모습을 생각잖고

한쪽 발을 건너 디디면 될 것을

뭔가 잃어버릴 것 같은 허전함에

우리는 붙들려 있다


어디엔들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으랴마는

하늘이 아파, 눈물이 날 때

눈물로도 숨길 수 없어


술을 마실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가 되어

누구에겐가 읽히고 있다



[ 서정윤 시인의 슬픈 시 ]









감수정이 풍부하고 문학을 좋아하던 여고생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유난히 시집을 좋아했고 자작시도 많이 쓰곤 했다. 엄마가 주문한 도시락이 창피해서 도망쳐 나오 듯 나는 교실을 빠져나와 늘 목백합이 있는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있자면 내게 배달을 해주고 돌아가는 도시락 업체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뭐가 그리 서럽고 창피하고 슬펐는지...


밥을 다 먹은 친구들은 나를 찾아 벤치에 와서 합석을 하곤 했다.


" 야, 문학소녀 따로 없네? 그 시가 그렇게 감명 깊냐? 뭘 울기까지 하고 그래? "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문학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고 감수성이 예민한 예비 시인 인으로 아이들에게 기억되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절친에게도 엄마가 보낸 도시락이 먹기 거북스럽다거나 창피하다고 말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까지도 내 여고 동창생들은 내가 시에 미쳐서 점심도 안 먹고 시집을 읽고 시를 쓰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떨어진 낙엽이 트리거가 되어 괜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걷다가 상쾌해진 감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나는 털썩 탄천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흘러가는 물을 보았다. 그러고 앉아 있자니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 난 분명 이렇게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은 상태였는데...'

멀쩡하게 운동복으로 차려입은 다 큰 여자가 벤치에 앉아서 울려니 타인의 눈치가 보여 스포츠 마스크를 눈썹까지 늘려 올려 썼다. 타지 말라고 머리 뒷부분부터 목까지 연결된 스포츠 마스크 안에서 나는 한 참을 눈을 내놓지 못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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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기억 속에서는 아직 그날의 감정이 마치 오늘인 것처럼 선명한데 난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 앉아 있는 괴리감을 느껴면서도 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동안 예상치 못한 옛 기억에 감정이 북받쳐 울어버린 것이 나도 당황스럽긴 했지만 다 울고 나니 마음은 한 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마스크는 눈물에 젖어서 무거워지고 축축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땀이 나서 젖은 것처럼 마스크 젖은 부분은 목뒤로 돌려 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화창한 날에도 사람이 우울하고 슬플 수 있구나를 알았다. 그렇게 화창한 날에도 나의 기억들이 예전의 감정과 주파수가 맞으면 눈물이 난다. 왜 우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탓을 하는 사람도 없는데 난 늘 그 눈물의 원인을 애꿎은 날씨 탓을 했다. 내 마음은 우울하고 슬픈데 눈치 없는 날씨만 너무 화장한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햇볕은 나의 눈물을 말려주었고, 가을바람은 울어서 뜨거워진 붉은 눈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주었다.

맵찔이 초등학생인 아들이 엄마표 배추김치를 먹고 싶다는 지난밤의 말이 생각나 오다가 배추 한 통을 샀다. 양파, 사과, 파프리카 그리고 각종 양념을 넣고 절여진 아들 전용 김치를 버무리는데 또 한 번 눈물이 났다.



이 놈의 눈물샘이 고장이 난 건지, 이 놈의 감정이 아직도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를 눈물이 났다. 하교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아들은 고춧가루가 눈에 튀어서 매워서 엄마가 눈물을 흘린 줄 알고 있다.



입안 가득 내가 만든 김치를 맛보는 아들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자나 간다. 그런 아들의 표정을 보고 나의 마음이 다시 어둠이 걷히고 화장함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이렇게 화장한 날에도 눈물이 난다면 나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과 감정을 끌어 앉고 해소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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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픈 시가 되어 나의 기억을 다시 읽고 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도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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