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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형벌

생각이 많을 땐 밖으로 나가 걷기부터

by 이도연 꽃노을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 중 하나가 기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특별한 능력이 일상을 살고 있는 내게 불쑥불쑥 떠오른다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나쁜 기억들을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꾹꾹 눌러서 회피하면 당장은 그 문제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안도를 가질 수 있지만 그 일련의 프로세스가 자꾸 되풀이되고 그런 회피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엔 나도 모를 얼룩과 그늘로 무겁고 불안하고 우울함이 싹튼다. 그러면 나는 줄 곧 현재 일상에서 내가 처해진 상황이나 심상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가령, 매일매일 잘 도 돌아오는 대출 이자 납입일이라던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무료한 일상이 불평이나 원인의 대상이 될 때가 많았다. 그리곤 누구나 비슷한 일상을 살아 가는데 나만 왜 이럴까 하면서 더 우울감에 빠지곤 했었다.



할 일이 있음에도 번아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갈수록 그런 악순환의 생각들은 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때로는 나의 의지가 아닌데도 문뜩 느끼는 불쾌한 감정과 불안한 느낌에 사로 잡혀서 뇌에 스위치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본다. 나의 뇌는 잘 때도 깨어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무언가 생각하고 불편한 감정들 때문에 일상이 힘들게 느껴진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걱정도 있고 안 좋은 추억도 있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나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을 때 나는 더 내 감정을 숨기고 회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요즘 난 매일 10-12킬로를 걷는다. 일단 걸으려고 밖으로 나가면 다양한 자극들이 내게 전달되면서 집중해 있던 생각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의미 없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누워있을 때는 허공에 이미 지나간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다니면서 예측 불가능한 감각이나 심상을 불러온다. 하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면 그날의 온도를 걸으며 뺨을 통해 감각으로 전해진다. 운동화를 신은 두발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밀어내고 나의 체중을 싣고 앞으로 걸어 나감을 물리적으로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실체 없이 떠다니는 상념에 젖은 상태가 아니라 현실의 공간에 내가 서서 걸어가는 느낌이란 나를 과거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현재에 있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산책로에는 두 손 꼭 잡고 서로 의지하면서 걸으시는 노부부도 보이고 강아지 보폭에 맞춰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도 보인다. 삼삼오오 벤치에 테이크아웃 커피잔들을 들고 업무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는 직장인들도 보게 된다. 나 혼자만 있는 공간이 아니고 여러 가지 소리들이 자극되면서 나의 뇌는 잠시 현실의 내 눈에 그리고 내 귀에 들이는 것들에 집중을 하게 되고 나는 어느새 그 시간 그 풍경의 또 다른 모습으로 산책하는 모습의 역할을 나도 담당하고 있게 됨을 느낀다. 이불을 박차고 나올 땐 다리가 무겁고 무기력으로 모든 게 다 싫었는데 막상 나가서 걷기 시작하고 나도 그 장면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직면하면 무언가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걷다가 보면 나무도 보이고 하천이 흐르는 자연의 소리도 듣게 된다. 시각과 청각의 나에게 또 다른 자극이 되어 내가 브레이크 걸린 것처럼 걸려 있던 옛 장면에서 나를 다시 현실 속으로 끌어내 준다. 어느새 손가락까지 따뜻함이 전해지고 이마에는 약간의 땀이 맺힐 정도로 30분 이상을 걸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좋은 호르몬들이 나와서 인지 나의 심상과 기분이 나아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햇살은 나의 마음을 훤히 비추고 꿉꿉하고 축축했던 나의 기억들이 소독되는 것 같은 상쾌함을 느낀다. 분명 한 발짝도 나가기 싫었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 보다 더 멀리 걸어보고 싶은 생각과 의욕이 올라오고 도전을 하게 된다. 하천으로 산책하는 것이 뭐가 도전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울감에 빠져 번아웃이 온 사람에게는 이미 집 밖을 나갈 것을 결심한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 시도이다. 실제 우울증과 번아웃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단순한 일조차 생각을 할 수 없고 행위로 옮겨지기 어려운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 맨날 집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너를 가꿔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말해주는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을 정도의 사람은 이미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을 잃었음을 먼저 인정해 주면 좋겠다.



운동해, 살 빼라는 말보다 전문가 상담이나 병원을 같이 가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몸살이 걸리건 열이 나면 가까운 내과에 가듯 우울감이 찾아오고 번아웃이 나를 짚어 삼킬 때 우리는 기꺼이 나를 전문가에게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다면 약도 복용한 후에 적어도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상은 확보할 수 있어야 실마리를 풀어갈 희망이 보인다.










심리상담을 하는 비용이 아까워서 가족이나 친지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하면 친구나 가족과도 멀어지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는 전문가가 아니다. 우울감이 지속되고 매사 의욕이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죽지 않는 병이라고 방치하기 쉽지만 사람의 감정은 다른 주변인들에게도 전가될 수 있기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치료를 해야 한다. 나도 그렇게 시작한 치료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예측불가능한 감정이나 우울감이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서 담아서 해결하지 않고 던져 놓았던 아주 사소하고 예전 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래서 난 일 년 동안 지금 느끼는 감정보다 기억하기 싫어서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던져 놓았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고 언어로 표현하고 다시 그때와 같은 감정을 토하면서 치유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다면 적절회 표현하고 내가 소화시켜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기쁜 감정이나 기억보다 더 잘 처리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두 시간씩 산책하고 걸으면서 깊숙이 묻어 놓았던 감정들을 꺼낸다. 때로는 다시 생각하는 것이 괴롭고 너무 슬프고 힘들지라도 나는 이 단계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한다. 집에서 닫힌 공간에서 하는 것은 집중이 잘 될 수도 있지만 자칫 그 감정에 먹혀버려서 헤어나 올 수 없게 될 수 있기에 나는 햇살 아래서 내 두 발로 땅을 밞으며 시도해 볼 것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 하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위에서 아래서 흐르는 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욕심과 조바심은 사라고 순리와 이치에 대해 저절로 깨닫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많은 새로운 자극들로 걸을 때만큼은 뿌듯하고 무의 경지에 오르는 듯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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