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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져야만 한다는 강박

열심히 노력했던 수많은 날들과 과정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by 이도연 꽃노을



조금 더 쌀쌀해진 날씨에 기모가 들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손가락이 뚫린 반장갑까지 끼고 오늘의 산책을 나섰다. 조용하고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기분이 다운되거나 나의 생각이 과거나 미래로 자꾸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기억 속 어느 슬픈 날이나 우울한 날에 앉을 것 같은 때에는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탄천으로 향한다. 과거의 얽매이다가 현재를 허투루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딱딱한 땅 위를 나의 다리 힘으로 밀어내어 걸어가는 느낌을 받는 것만큼 내가 지금 여기 현실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매일 가는 산책로라 매일 같은 풍경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매일 그 길을 걸으며 매일 다른 감정과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같은 풍경인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나무 잎은 단풍이 지고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 있게 되었고 왜가리들은 추운 그늘을 피해 햇볕이 잘 드는 돌이 많은 물가에 줄 서서 앉아있다. 어제 걸을 때는 없었던 어린 학생들이 연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제 내가 선물한 커피를 돌려 달라며 투정을 부리는 연인들 말속에는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시간이 묻어 있었다. 또 중년의 아저씨가 바람막이 잠바를 휘날리며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린다. 제법 빠른 속도로 큰 에스자 커프를 그리며 달려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아저씬 몇 미터 가지 못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바위가 쌓여있는 곳과 하천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저씨는 전동 킥보드는 저 멀리 날려 버리고 하천으로 곤두박질치기 전 산책로에 쓰러졌다. 핸드폰과 장갑은 날아갔지만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머리만은 다치치 않게 하기 위해 넘어지는 순간까지 머리를 땅에 닿지 않게 들고 계셨다. 순식간에 펼쳐진 풍경에 나는 놀라 119를 누르려던 찰나 아저씨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셨다. 반대편에 조깅을 하던 젊은 청년은 얼른 날아갔던 아저씨 모자를 주어서 아저씨게 드렸다. 아저씨는 멋쩍은 듯 모자를 다시 쓰고 전동 킥보드를 일으켜 세우고 유유히 자전거 도로를 빠져나가셨다. 그리고 아까 아저씨의 모자를 주어주고 다시 달려가는 그 남자의 표정에서 웃음과 뿌듯함의 미소를 보았다. 이렇게 같은 장소 같은 풍경 같아도 매일 나는 탄천을 걸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갈대가 내 키보다 더 큰길을 지나가는데 유독 눈에 띄는 코스모스 세 송이가 있다. 늘 지나다니면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눈으로만 감상하던 코스모스를 오늘은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손으로 잡고도 찍어보고 옆모습도 찍고 항공 샷으로도 찍고... 이리저리 앵글을 다르게 찍은 코스모스 사진 중 몇 장을 건졌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띠었고 어느새 내가 닮고 싶은 자연에 눈길과 관심을 주며 그 속에 서 있었다. 만족한 듯 사진을 찍고 다시 산책로에 서서 걸으니 어느새 기분은 전환이 되어있었고 내 머릿속에는 짧게나마 행복이란 별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어쩌면 거창한 행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른 속도와 모습으로 같은 탄천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저마나 다른 빛깔의 행복을 마주한 것이다. 비록 넘어져서 창피는 좀 했을지 모르지만 아저씨는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자신감 있게 퀵보다는 타고 달리셨다.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며 투정을 하던 연인들의 대화 속에도 그들만의 밀당과 그들만의 추억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 작은 한 순간들이 모여서 추억이 되고 행복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임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거창한 성과나 결과만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었던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6킬로 지점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탄천의 반댓길에는 아까 내가 걸어왔던 길보다 나무의 그늘이 많이 져있었다. 햇볕이 사라지니 조금 더 서늘한 느낌도 들고 보이는 나무색깔도 짙어 보였다. 한번 더 고개를 돌려 아까 걸어왔던 산책로를 바라보니 여전히 그곳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더 들어 살펴보면 그늘진 곳과 햇볕진 산책로가 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당장 눈앞에 펼쳐진 곳만 보면서 내가 보는 그것이 다라고 느낀 것만 같았다. 어쩜 인생도 그런 것은 아닐까? 지금은 조금은 춥고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 같아도 저 건너편에는 다시 햇볕이 오고 따스함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어간다면 조금은 마음이 가볍도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기억하는 나의 슬픔과 상처를 끌어안고 계속 그 기분 상태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지나치치 못하는 함정에 빠져서 허우적 된다면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걷고 있는지, 매일 같은 것만 같았던 내가 걸어가는 길에 오늘은 어떤 해가 드리우고 어떤 바람이 지나가는지...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이미 꽃밭에 도착해서 걷고 있다고 해서, 내 인생의 겨울을 미워하고 견딜 수 없는 계절이라고 낙인찍지 말고 그 겨울도 봄에 꽃이 피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하자. 나는 언제나 소중하고 내 인생은 내가 매일 살아내는 순간들이 아름다운 시간일 테니까.










오늘이 힘들고 그 힘든 과 감정이 나의 자존감까지 깎아 먹으려 할 때 걸으며 생각해 보자. 결과나 성과가 없다고 하여 내가 걸어온 길이 모두 헛된 길이었는지. 그 길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걸어 내디뎠기에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인데 왜 나는 나의 자존감은 결과에 따라 평가했는지. 노력했던 시간과 겪어온 경험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도전하고 실행한 것이기에 마땅히 존중받고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




손에 쥔 것은 없고 절대 지키고 싶은 것들의 철칙이 많다면, 그로 인해 오늘의 내 삶이 버겁다면 잘되야 한다 꼭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끓이지 않고 펫바퀴 돌 듯 자기 발전하고 있는 옛 기억과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골머리는 싸매고 누워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보자. 아무 계획 없이 발이 닫는 곳으로 걷다 보면 내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걷는다. 함께 걸으실까요?












이미지 출처: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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