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나를 통제하는 삶
인간은 AI이가 아니다. 아니, AI. 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매일 완벽함에 가까워지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사람이다. 내가 맡은 일의 결과는 늘 완벽해야 했고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하려고 강박을 가직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온몸의 근육은 물론 얼굴의 근육마저 굳어서 표정이 사라지고 항상 긴장하고 살았던 것 같다. 마치 곧 사이렌이 울리면 출동을 해야 하는 군인들처럼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모든 일들을 같은 강도로 잘하고 같은 강도로 노력을 하고 열정을 쏟어서 했다. 열정을 쏟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 사이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배터리가 닳아 가는 줄 모르고 매사에 열심히 살았다.
혼자 살 때는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열심히 하면 되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다 보니 나의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에 가까워야 평온함을 찾는 나의 성격과 행동이 다른 가족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강요하게 되거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됨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무리 가족이고 자식이라 하더라도 각자만의 성격이나 고유성이 있는데 말이다.
쌀쌀해진 날씨에 기모가 들은 운동복을 입고 비니를 쓰고 늘 그렇듯 탄천으로 행했다. 늘 뭐든지 완벽해야 하므로 걷기 시작할 때 추위로부터 날 보호할 옷들을 챙겨야 했고 빨리 걷다가 땀이 조금 나면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 시점에 필요할 만한 차림으로 나서려고 보니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이 엉키기 시작했다. 걷기에 적응이 되어 몸의 온도가 높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10~12킬로를 걷다 보면 더러 땀도 나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다 도착해서 아파트 숲길로 걸어올 때는 났던 땀이 마르면서 다시 추워지고 감기에 걸릴 것이 걱정됐다. 이렇게 여러 가지의 생각이 불과 1-2초 사이에 떠오르면서 나의 머릿속은 다시 엉켜 버린다. 오늘은 그런 생각들이 드는 것조차 거추장스럽고 혼란스러워 많이 생각하지 않고 솜이 들은 얇은 조끼하나를 걸치고 무작정 나섰다.
아파트가 즐비한 구간을 지나 탄천으로 연결되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개의 횡당보도를 건너야 했기에 추웠다. 추우니 스트레칭도 하고 제자리에서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탄천으로 연결되는 상류 줄기에 도착하고 본격적으로 보폭을 크게 빨리 걸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으니 온도가 적당해졌다. 아마 예전 같으면 입었다 벗었다 할 바람막이나 점퍼를 가지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난 내 몸이 가는 대로 움직여서 간단한 쌀쌀함 쯤을 물리쳤다.
여느 때와 같이 딱딱한 땅을 밑으로 누르고 내가 튀어 오른다는 느낌으로 힘차게 걸어가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 난 왜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함을 추구할까? "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순간순간마다 대처할 능력도 있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미리 걱정해서 그에 따른 해결 방한들을 생각해 놓는 습성이 나를 꽉 옭아매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심리적 답답함이 밀려왔다. 만성적 예기불안을 겪으면서 자동으로 불안하니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 따져서 발생했다 치고 각 상황이 진짜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할지 대안을 생각해 놓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대안들은 쓰지도 못하고 필요 없던 적이 많았다. 왜냐면 우리의 인생은 늘 내가 예측하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추워서 감기에 걸리면 안 되고 "
" 너무 더워서 땀이 나면 모자가 젖으면 안 되고 "
" 오늘 정한 목표인 10~12킬로를 못 걸으면 안 되고...."
내 머릿속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고 누가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내게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걷다 보면 땀을 흘리게 될 확률이 많은 활동을 하면서 땀이 옷이나 모자를 적시면 그 불쾌함은 또 견디기 힘들 것 같은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나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규칙도 규범도 아닌 자기 통제나 자기 절제의 창살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해도 만족하지 못할 생각들에 대비하면서 사는 내가 안 돼 보였다.
" 안 되는 게 많아서 정말 안 되겠네..."
무슨 시트콤도 제목도 아니고 안 되는 게 많아서 정말 인생이 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편도 6킬로 정도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리 대비하는 성격이나 습관이 문제가 아니라 모두 부정적인 방법과 화술로 나는 나의 내면과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추워서 감기에 걸리면 며칠 걷기 운동을 쉬면 되고 '
' 너무 더워서 땀이 날 것 같으면 모자를 벗으면 될일 이었다. '
' 오늘 내가 세운 10~12킬로를 걷기 못한다면 다음에 도전하면 될일 이었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오늘의 나의 걷기 도전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잘하고 완벽하고 싶은 마음도 일종의 강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다 보면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더 많은데 나는 매일 무엇이 내 계획대로 안되고 내 통제 밖으로 벗어날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살아진다고 해도 너무 뻔하고 재미없다는 것을 알지만 언제나 각이 잡히고 잘 정돈이 된 일상을 꿈꾸어 왔던 것은 아닐지...
내가 만든 철칙이 나를 오히려 옭아매고 잘 못 될까 봐 움직이지 못하고 도전하지 못하는 꼴을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연 속을 걷는 시간 동안은 이렇게 내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한 나의 인지적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다. 마치 카메라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는 세상처럼 작고 편엽함 속에 살고 있는 있다. 탁 트인 자연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밝게 비추는 햇살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들에게 닿아 통풍이 되고 살균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나는 물과 나무가 있는 풍경을 걸으며 나의 습괒거 불안함을 달랬다. 운동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매일 날씨도 제법 추워졌는데 매일 걷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의 삶이 지치고 내가 이해가 안 되고 복잡할 때는 자연 속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꼭 무엇인가를 깨닫지 않아도 자연 속에 잠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많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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