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우리 또는 타인이 우선이라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닌,
먼저 내 삶에서 나의 자리를 정립한 후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 순서이다.
[ 꽃노을 ]
중학교 시절 헬싱키 인터내셔널스쿨을 다닐 때가 기억이 난다. 나는 영어 알파벳 순서도 헷갈릴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14살에 처음 외국에서 살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기에 모두 만국 공통어인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미 초등학교 교육까지 한국에서 마친 나는 사춘기가 되어서야 외국에 처음 나간 탓에 영어를 할 때 한국말 문장을 먼저 생각하고 그걸 다시 영어로 바꾸는 식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곤 했다. 그때 인상 깊었던 것은 여러 인종이 모인 학교이길래 우리나라를 설명하거나 알리는 행사들이 많았는데 그럴때 마다 한국인들은 우리나라 (our country)라는 표현을 유독 많이 사용했다. 남미나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우리나라라는 표현 대신 나의 나라(my country)라는 표현을 썼다.
다 크고 배움이 모두 끝난 성인이 되고서야 우리나라만 나 아닌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따져보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나보다 우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배워왔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나만 알지 말고 타인에게 양보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라 등 나보다 타인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삶 속에서 자연스레 세뇌가 된 것 같다. 내가 마흔이 넘어서 제일 혼란스러웠던 것은 나도 나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등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생각과 눈치는 누구보다도 많이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더 궁금했고 혹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될지 두려웠던 적도 많다. 나의 모든 선택도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내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왔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막 졸업을 하고 들어간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연수만 무려 2주가량이나 되었다. 그때 외쳤던 구호도 생각이 났다.
"나 아닌 우리!"
그렇다 대기업에서는 개개인의 생각이나 취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맡은 엄무를 직위에 따라 지시가 떨어지면 수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팀이 되고 철저히 나라는 사람은 지워지고 팀워크가 우선시 되는 교육을 받았다.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한 명이라도 팀에서 이탈이 되면 팀에게 막대한 피해가 가도록 하는 벌점이나 프로그램은 매일 같이 계속되었다. 그때 그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기수의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다고 하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기고 유대감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나'라는 개인은 우리라는 이름에 속해져 잊히고 있었다. 그리고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니 모든 일과와 선택들이 나가 아닌 팀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들처럼 팀 전체를 위해 희생하고 감내해야 했던 일들이 많았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공교육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서 그리고 조직 문화까지 나는 나보다 우리 또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연습과 경험이 넘쳐났다. 이젠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은 일상에서 조차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거의 장애가 되어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몇 십 년간에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교육에 노출된 환경에 나는 나를 잊어버리고 나와 제일 친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렸고 나 자신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우울증과 공황장애등으로 일상이 물들어 있었다.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를 넘어 우울증이 나를 갉아먹어도 나 스스로는 내가 우울하다는 생각도 못했을 지경이었을 때 나는 가족의 권유로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심리 치료의 대부분은 나의 어릴 적부터 나의 생각 그리고 나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 주된 치료였다. 거의 반년은 상담사의 쉬운 질문에도 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름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나의 지난 삶의 결정 등은 타인이나 가족에 의해 영향을 받은 대로 선택하고 살아왔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나는 사회적 민감도가 매우 높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감, 자존감, 자존심 모두 결여된 상태로 빈껍데기에 눈만 멀뚱멀뚱 뜨고 하루하루를 시간을 잉여 인간의 삶을 사는 듯했다. 나는 내 아이의 엄마로 존재해야 했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 있어야 했고 나는 내 남편의 아내로 결혼과 동시에 부여된 역할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자신감 넘치고 발랄했던 나의 모습은 서서히 내 기억 속에서도 잊혀졌고, 현실에서 내가 아닌 누구의 아내 또는 누구의 엄마로만 존재하는 것 같은 허무함에 무기력했다. 그렇게 1년 반 넘게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잊고 있었던 나를 다시 기억해 냈고 잃어버린 나의 성향과 특성들을 다시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나보다는 우리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다시 나만의 우주를 다시 세우는데 집중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산책을 갔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내게 선물했다. 그리고 내가 잊고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 꿈이었던 작가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내가 글을 쓰고 연재한 지 5월 초면 딱 1년이 되어간다. 나의 하루는 아내와 엄마로 사는 비중을 줄이고 내가 나답게 나로서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들을 늘려 나갔다. 그러면서 나는 우울증의 심연에서 다시 수면으로 조금씩 올라와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내가 온전히 나답게 서있어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들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야 나의 가족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오늘도 내가 온전히 혼자될 수 있는 공간에 가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들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 보다 우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나를 먼저 체크하고 돌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 나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고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해졌다. 나의 우울함이 아이나 남편에게 전가되는 것이 훨씬 줄었으며 아이도 남편도 그런 나의 모습을 더 편안해하고 행복해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나의 아이한테 이렇게 말해 준다.
" 네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참 소중한 것이야. 네가 혼자 네가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 너의 생각과 너의 취향을 존중해 줄게. "
우리라는 개념을 교과서나 사회에서 배울지라도 내 아들이 자기 자신 다움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보다 타인을 더 존중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옳다고 하는 사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나의 자식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지 않은가? 잊지 말자. 나 아닌 내 자식과 남편도 내게는 철저하게 타인이다. 내가 먼저 행복하고 나다워질 때 타인인 가족이나 지인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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