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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May 14. 2024

F학점을 맞은 양육자?

빠르고 1등 하는 자만 기억하는 폭력적인 사회

정신과 질병코드 F는 나와 내 아이의 인생에
F라는 주홍글씨가 찍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부모에게나 내 아이는 나보다 더 소중하다. 임신 기간 동안 공황장애를 약물 없이 극복하고 결혼 7년 만에 나는 내 아들 모모를 낳았다. 그렇기에 모모는 내게 나보다 더 소중한 그런 존재였다.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그리고 우렁찬 울음소리는 모모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시호탄 같았다.


임신을 준비하면서부터 나는 이 세상에 출간된 출산과 양육서를 모두 읽어 버릴 기세로 육아서적을 많이 읽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 내게 부여될 엄마라는 역할은 솔직히 반은 부담스러웠고 반은 설렘이었다. 그때 육아서적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육아 서적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마치 뱃속 태아가 나오면 그때부터 모든 걸 완벽하게 해 줄 수 있는 양육자가 될 것처럼 나의 태교는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육아 상식과 TIP들에 대해 읽고 숙지하는 것이었다.


임신 전부터 불안증과 공황장애가 있었던 터라 나는 아이의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정신건강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상태에서 모모를 낳았다. 모든 육아 전문가들이 책에서 알려준 모범적인 육아를 했다. 그래도 모모가 울면 당황했고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여느 엄마들처럼 다크서클이 배꼽까지 내려온 판다가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경이롭고 벅찬 일이었으며 존경스러운 일이었다.



  



예방접종도 꼼꼼히 챙기고 영유아 발달 설문지는 더더욱 신중하게 모모를 관찰하고 기재하고 받았다. 모모가 2~3살이 되면서 아이의 발달이 차이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나오는 개월 수와 그 개월수에 맞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모습들이 모모에게 보였다. 소심한 A형에 모든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나는 남편이나 다른 가족에게 모모에게 보이는 특이점들에 대해 종종 의논을 했다. 그러나 모든 대답은 "아이는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아니라 발달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한결같은 식상한 대답들 뿐이었다.


원리 원칙주의자에 완벽주위자 성향을 가진 내게 모모는 나와는 성향이 많이 달라 보였다. 높은 데만 있으면 올라가고 칼라콘만 보면 전력질주를 해서 칼라콘에 집착하곤 했다. 칼라콘은 보통 위험한 공사를 하는 곳이나 주차장에 많이 서있기에 아이의 행동은 매우 위험해 보였다. 잡으려도 다니고 안 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지만 아이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왜 다른 아이들은 관심도 없는 것에 우리 모모는 광적으로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인지 속상했다. 심지어 깨끗하고 안전한 물건도 아닌 야외에 위험한 곳을 표시하려고 해 둔 칼라콘에 꽂힐 줄은 정말 몰랐다. 심지어 친정 엄마는 칼라콘 판매점에서 칼라콘을 종류별로 사 와서 모모에게 주었다. 집에서 안전하게 가지고 놀라고 사준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아이들이 어른들 마음대로 되는가? 밖에 나가면 위험하게 도로에 뛰어들고 먼지가 쌓인 칼라콘에 착 달라붙었다. 한 가지에 너무 집착을 하고 위험하기에 나는 걱정이 되어 모모를 38개월 때쯤 동네 소아청소년 정신과에 데리고 갔다. 그러나 전문가에게서도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발달에 문제까진 없어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오히려 아직 어린아이를 정신과에 데리고 와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의 불안증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듣고 왔다.





아이가 점점 클수록 다른 아이들과 다름을 느꼈다. 기분이 좋거나 게임을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손을 앞뒤로 흔들고 두 다리를 쭉 뻗는 행동을 했다. 자신의 느끼는 좋은 감정을 적절한 행동으로 표출하는 느낌이 아니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점점 그때부터 나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횟수가 얼마큼 되는지 보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ADHD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질 무렵이었기에 나도 혹시 내 아이가 보이는 행동이나 증상이 ADHD이면 어떻게 하지? 하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모모의 그런 특성은 집이 아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5살부터는 모모의 선생님들로부터 전화를 받는 횟수가 늘어만 갔다.


하루는 유치원 원장님께서 나에게 조심스레 모모를 아동발달센터나 심리센터에 가볼 것을 권하셨다. 나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당일 예약이 가능한 센터를 찾기 위해 아동발달 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그중 한 곳이 퇴근 시간 전인 시간에 모모를 데리고 와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유별난 것이라면서 아동발달 센터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지만 나는 아동발달 센터에서 안내한 데로 모모를 데리고 남편과 센터를 방문했다. 그러나 감각이 예민하고 각성이 높은 아이라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 뿐 ADHD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 이러다가 ADHD 진단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고 답답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리기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는 나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순 없었기에 나는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그리고 사회성 치료를 시작했다. 치료를 하는 것이 세 가지나 되니 일주일에 5일은 센터서 살았다. 그렇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만 6세가 되기 전까지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은 그것뿐이었고 나의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졌지만 제발 ADHD가 아니길 바랐다. 엄마의 촉이 빗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엄마의 촉은 빗나가지 않았고 아이는 만 6살에 ADHD 진단을 받았다.


  



당시 모모의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좌뇌와 우뇌 발달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고 작업기억 능력이과 눈 맞춤등 사회성 발달 지연을 꼽아 최종 ADHD 진단을 내리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어머니 F 코드입니다 "

" F 코드가 뭐죠? "

" F 코드는 정신과의 질환 코드로 QHO에서 정한 국제 질병 분류 코드입니다. "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질병 코드 F는 나의 그동안의 육아 성적표가 F 학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간절히 빗나가길 아니길 바랐는데 현실은 참 냉정하고 무서웠다.


사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ADHD진단만이 아니었다. 일단 걸리는 것은 한국에서는 이 "F'코드로 인해 단 한 번의 약물 처방 기록만 있어도 5년간 보험가입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하는 병들은 낫기 힘들고, 잠재성만 있어도 '예비 문제 유발자' 또는 '예비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는 것이었다. ADHD에 대한 관심은 늘어난 반면 ADHD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오늘도 많은 아이들은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힌다. ADHD는 뇌 발달의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느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빨리빨리를 늘 입에 달고 살고 공부 잘하고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는 학생을 착한아이라 명명하는 대한민국에서 ADHD들은 미운 오리새끼이다. 미운 오리새끼를 낳고 양육하는 엄마는 ADHD 질환이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고 슬퍼하며 절망에 빠진다. 나도 그랬다. 왜 우리 가족에게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갈 ADHD양육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 ADHD 뇌 발달의 속도가 남들과 다를 뿐입니다. 엄마의 잘 못이 아닙니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가 있듯 우리의 아이들의 뇌도 저마다 발달되는 속도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절망과 우울이 아니라 인내와 인정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내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세요.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F등급인 아이인 건 절대 아닙니다.! "


걷는 속도가 느린 거북이에게 토끼처럼 빨리 걸어보라고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물론 사회는 기다려 주지 않지만 우린 우리 아이를 위해 인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부모까지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면 우리 아이들은 느리게 걷는 걸음조차 걷을 의지가 꺾입니다. 오늘도 자신의 속도로 묵묵히 이겨내고 노력하는 아이를 응원해 주는 엄마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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