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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Jul 02. 2024

나의 꼬꼬마 선생님

속도와 시점을 바꾸니 보이는 것들


엄마도 아이에게 배운다 
그리고 함께 성장한다 





최대 난관은 내 아이


모모가 ADHD 진단을 받기 전에도 나는 나름의 노력과 성장을 했다. 내가 원하는 학과에 갔고 내가 원하는 회사에 입사도 했다. 내가 노력만 하면 뭐든 못할 것이 없다는 오만방자한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때는 미쳐 그런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몰랐지만 말이다. 나의 어렸을 때의 많은 결핍은 나의 성실함과 인내와 노력으로 모두 이뤄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 아이의 결핍과 다름은 나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전에는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였다면, 이제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과정을 즐기는 삶으로 전환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전환이 아니라, 나의 삶에 깊이 스며든 근본적인 변화였다. 이런 변화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모를 낳기 전 나는 완벽함을 추구하고 걸어 다니는 도덕책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매우 부합하고 적절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만족스러웠고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웠다. 그러나 ADHD 아이는 내 기대와는 달리 매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다른 아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의 잣대와 가치관으로 본 나의 아들은 낙제 수준이었다. 하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는 나처럼 될 수 없어 보여 괴로웠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봉착한 마음은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난 것처럼 답답했다. 그런 상황들은 나를 깊은 우울과 번아웃으로 이끌었다. 그 모든 상황의 이유를 아이에게서 찾곤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창피하기도 하다.




성장보다 성공이란 목적지를 지향했던 삶


아들이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많은 혼란과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결핍은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아이의 성향과 관심, 그리고 그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맞추어 삶을 조율하는 것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점차 그것이 나에게 주는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아이만 부모를 따르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갈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열어 주었다. 이미 정해진 길을 사뿐사뿐 조심히 금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나는 없는 길도 내가 만들어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은 순탄치 않았고 모래와 자갈 심지어 거대한 바위와 장애물에 갇혀 있었지만 그런 장애물들을 치우며 내가 새로 만들어 가는 길에 대한 뿌듯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새로 길을 낸 그 과정과 경험은 사라지지 않음을 느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누구나 다 아는 길을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목적지에 다 달으면 다른 성공과 목적지를 선택하곤 했다. 그렇게 무슨 게임의 한판 한판을 깨고 끝판왕을 제치고 또 다른 계획과 목적을 찾아 유랑하는 삶을 살았다. 운이 좋았던 열심히 노력을 했던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른 목적지가 보이고 그곳을 가기 위한 전속력으로 길을 달렸기에 그 길을 가면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은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예전에는 사회가 정의한 성공, 즉 좋은 직장,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 등이 나의 목표였고 도착해야 할 목적지였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하면서, 이러한 외적인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하루하루의 소중함과 그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삶에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으로의 전환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성공과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의 큰 희열보다 오늘을 나답게 아이의 속도로 맞추어 살아가면서 보이는 풍경들은 내게 소소한 기쁨을 주었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본 풍경과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의 소중함을 내 마음속에 훅하고 들어왔다. 





나의 삶 나의 만족은 어디서 오는가?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걸어가면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사는 삶은 세상을 다른 관점과 시각을 같게 했다.  예전에는 바쁘게 지나치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작은 것들도 나름의 이유와 제 멋을 뽐내고 있었다. 아들의 ADHD성향을 개선하고 노력한 시간들은 나에게 새로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나도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아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사슴풍뎅이 키우기, 아프리카 희귀 식물 키우기, 우주의 수많은 별들에 대한 이야기 아들은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내가 걸어온 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바른 길이라 해서 아들이 걸어가는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아들은 아들의 속도와 눈높이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나는 모모의 나이 때 자신만의 속도와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대신 어른들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고 남들이 착하다고 평가하는 일에 몰두했으며 나의 만족은 내 안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만족의 타인이 인정해 주는 말속에 있었고 나의 만족은 나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대만 혈안이 되어있었다. 철이 일찍 들었고 착하다는 칭찬들에 심취해서 나를 점점 잊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는 행동을 40년 가까이 하니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나는 내가 뭘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레고를 만들고 우주에 심취해 있고 심해 바다를 거닐 듯 자유롭고 반짝이는 아이의 눈빛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사람이 얼마나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자라지 못한 내 유년의 시절이 원망스럽다가도 내 아이가 부럽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아들의 모습은 대리 만족을 느끼게도 한다. 아들의 오늘은 실수가 잦고 과잉행동으로 느껴질지라도 자신의 만족에 자신을 맞기는 순수함이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내 삶의 꼬꼬마 선생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비관한 시간들이 길다. 하지만 이젠 그 비관은 멈추었다. 비관하며 괴로워하는 시간 대신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매일매일이 소중한 순간들로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모모의 웃음, 모모의 작은 성취, 그리고 모모의 노력 모두가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현재에 집중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시간대신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들이 있는 이  순간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여정은 끝없는 배움과 성찰의 과정이다. 아이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나를 성장시키고,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속도와 시점이 바뀐 삶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보여준다. 오늘도 나는 나의 인생 꼬꼬마 선생님인 아들을 관찰한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아이에게 다시 배우고 있다. 오늘도 이 값진 수업료는 아들이 좋아하는 어묵볶음과 찜닭으로 대신하려 한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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