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차언니 Aug 27. 2020

슈퍼맨은 대체 왜 돌아와서...

비교 당하는 괴로움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로고 (출처:공홈)


EPISODE 1.

1호와 2호는 한 발 한 발 어렵게 걸음을 떼기 시작한 3호가 아주 기특했다. 돌 무렵이니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시기였다. 작디 작은 아기의 발이 모든 것을 지탱하고 견뎌내며 도약해 나간다는 사실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흐뭇한 마음으로 동영상을 촬영해 여느때처럼 양가에 전송했다. 그리고, 즉시 답변이 돌아왔다.


3호 걷는 모양새가 좀 이상한데 괜찮은 거니?


3호의 친할머니께서 우려의 말씀을 전하셨다. 전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셨는데, 한 개그맨의 아이가 깨금발로 걸어다녀 부모가 오래도록 속을 썩었다는 배경 지식이 덧붙었다. 3호 걸음걸이의 형태가 불안하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그제껏 양양했던 1호와 2호는 괜스레 기가 죽었다.


아직 걷기 전, 잘 넘어지는 방법을 익히던 시절의 3호


EPISODE 2.

2호는 평소 3호의 먹을거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가능하면 간이 되어 있는 음식을 먹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알러지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접해보지 않은 식재료는 유의해서 사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3호의 외가 식구들만 만나면 이 원칙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새로운 음식들이 속속 3호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1회성 이벤트에 가까운 사건이므로 다툼까지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허탈함이 몰려 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OO이네 애는 그 것도 잘 먹더라고.


이번에도 기준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있었다. 3호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한 연예인 부부의 아이였다. 오빠가 있어서인지 다양한 음식을 일찍부터 섭렵한 것 같았다. 3호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위험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3호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1호와 2호는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




단적인 두 가지 예를 들었을 뿐,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여파는 반백수패밀리 삶의 곳곳에 미쳤다. 걷는 시기, 말 하는 시기와 구사하는 언어 수준, 쪽쪽이를 떼는 시기 등 다양한 내용이 화젯거리로 도드라졌다. 매번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필연적으로 비교 당하는 날들이 지속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조건은 충분했다.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대부분의 경우는 '네, 알겠습니다.'라는 나이스한 대답으로 상황을 종결짓곤 했다. 양가 어른들의 걱정에 애정이 스며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1호와 2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스멀스멀 머리 위로 스팀이 올라올 것 같은 날이면, 그들은 도리어 경쾌하게 노래를 불렀다. 전국민이 다 아는 바로 그 노래의 한 소절을 말이다. 슈퍼맨, 도대체 너는 왜 돌아와서 반백수 패밀리를 힘들게 한단 말이냐! 어쩌라고 재미도 있단 말이냐! 맘 놓고 미워할 수도 없게...




김개미 시인의 동시집 <오줌이 온다>의 첫 머리를 여는 '시인의 말'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좀 못생겼으면 어때
가끔은 귀여울 때도 있는데
좀 멍해 보이면 어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하는데
좀 만만해 보이면 어때
진짜로 만만하지는 않은데
좀 게으르면 어때
중요한 건 다 하는데


남들이 어찌 보든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는 의미이리라. 실제로 3호의 속도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거나 느렸을지는 몰라도, 인생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곁길로 새어나감 없이 순차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속도로 말이다. 버릇이 될까봐 걱정했던 까치발도 잘 걷기 위해 잠시 잠깐 지나가는 과정이었고, 갑자기 접하게 되어 당황스러웠던 음식들은 순차적으로 양과 간을 늘려 이제 걱정 없이 먹일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삶의 방향성을 바꾸고, 진행속도를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 하는 것은 행복할 시간을 좀먹는 일이다. 이렇게 살도록 태어난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한 번 김개미 시인처럼 외쳐 보련다.



슈퍼맨이 무얼 하든 말든 어때?
우리는 그냥 반백수 패밀리일 뿐인데.
다른 아이와 비교 당하면 어때?
3호에게는 3호만의 속도가 있을 뿐인데.


이전 26화 과묵한 아빠와 수다쟁이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