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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Aug 21. 2020

과묵한 아빠와 수다쟁이 엄마

함께하는 일상이 선사한 위로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2호는 울음이 많은 엄마이자, 아내였다. 뜨끈한 눈시울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를 겪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경험하듯, 흔하디 흔한 변화였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다 어렵고 또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것쯤은 예사인지도 모른다. '통상적인 현상'이라는 굴레 안에 갇힌 모성이 위로받는 일은, 그렇기 때문에 순탄치 않다.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모든 존재가 지나치는 관문. 그녀 또한 다른 이들처럼 으레껏 그 문을 통과할 뿐이므로.


하루 종일 나랑 대화하는 유일한 지식인이 오빠야.

   

회사에서의 하루 일과를 저녁 식탁의 반찬거리로 주섬 주섬 올려놓던 1호가, 순간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2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사의 명암을 감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일까? 아니, 마땅히 대화할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조적 표현인가? 그것도 아니면 지긋지긋한 회사 얘기는 집어치우고 보다 수준 높은 대화를 하자는 의미? 1호가 자신의 모든 추리실력을 동원해 2호의 심리를 가늠하려고 하는 동안 그녀의 눈 밑이 확연히 붉어졌다. 곧 그 자리에 따뜻한 눈물 방울이 맺힐 것이란 예고였고,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1호는 번뇌했다.


2호의 마음속은 아주 오묘했다. 1호가 추리한 모든 것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지금의 상황이 공연히 서운하다는 것.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수준의(그들에게 명확한 언어가 있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 원초적인 보디랭귀지를 활용하며 3호와 하루 종일 육체적인 씨름을 하던 2호에게 1호와의 대화 시간은 해방의 순간이었다. 인간다운 문장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유일한 때였다. 1호는 그녀와 세상의 실낱같은 유대감을 간신히 이어 붙이는 중개자였다. 그런데 1호의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세상의 '어두운' 단면. 하루 종일 늘어질 대로 늘어진 2호의 감정을 바짝 수축시키기는커녕 더욱 까라지게 했다. 더군다나 그런 류의 서글픈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화자가 아닌 청자의 역할을 택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방청객이 되어 리액션을 하는 것으로 하루가 마감되기도 했다. 지적인 언어를 구사해 볼 찬스를 놓치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1호의 말수가 늘어날수록 2호는 입을 다무는 날이 지속되었다.




놀랍게도 1호의 육아휴직이 시작된 이후에는 상황이 반전되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입을 놀리는 것은 2호 쪽이었다. 아이유의 노래 가사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였다. 2호는 어서 일어나기를 권유하는 알람이 되기도 했고, 아이와 노는 방법을 상세히 안내하는 설명서가 되기도 했다. 요리를 하는 동안 요목조목 잡다한 소재들을 노동요 삼아 흥얼거리기도 했고,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는 주치의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집안에 '대화할 수 있는 지식인'이 한 명 생겼다는 사실이 2호의 우울을 떨치는 가장 큰 치료제로 기여했다. 새롭게 등장한 수다쟁이의 눈물샘은 결국 건조한 바닥을 드러냈다. 기분 좋은 가뭄이었다.


눈칫밥으로 살아 낸 만 1년의 인생. 3호는 2호의 심경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매일 축 처진 상태로 로봇처럼 자신과 놀아주던 2호가 생기발랄의 화신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3호는 1호가 늘 자신의 곁에 있어서 신났으며, 2호가 예전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기뻤다. 탄력을 받은 3호의 텐션은 무서운 상승 기류를 탄 채 저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폭발적인 3호의 에너지는 뜻하지 않은 역효과를 가져왔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분골쇄신하던 가장을 철저히 굴복시킨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3호는 늘 1호의 예상치를 넘어서는 왕성한 체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보행 능력의 변천사가 반백수 패밀리의 일상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쳤다. 육아휴직 전에는 기어 다니거나 팬스를 잡고 일어서는 것이 3호의 최대 능력치였는데, 어느덧 스스로 발을 떼기 시작하더니 금세 수월하게 뛰어다니는 모습까지 보였다. 1호의 적극적인 서포트가 빚어낸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보행이 자유롭다는 것은 한층 신속하고 한결 정확하게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기도 했다. 3호를 따라다니느라 피곤해진 몸과, 그녀가 벌여 놓은 사태들을 수습하느라 지친 마음 때문에 1호의 입이 굳게 닫히는 날이 왕왕 생겼다. 1호는 한 주에 하루 정도, 아주 과묵한 남자가 되었다.


Image by Daria Nepriakhina from Pixabay


그런 날이면 1호와 2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3호가 잠든 후의 식탁 위에는 가성비 좋은 와인 한 병과 후다닥 만들어 낸 안주가 나란히 올랐다. 불문율처럼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그 밤. 와인잔이 쨍- 하고 부딪히는 소리와 바사삭- 하고 음식이 씹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곤 했다. 1호의 육아휴직은 두 사람을 각각 과묵한 아빠와 수다쟁이 엄마로 만들어 주는 동시에, 함께 하는 침묵의 가치도 깨닫게 했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정적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을 내가 모두 이해하고 있음을, 그러니 그대는 혼자가 아님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치열하게 대화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잊게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낸 다음 날이면 두 사람은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육아휴직 전, 1호와 2호 사이에 놓였던 것은 대화의 문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함께 하는 시간의 접점이 없었다는 것. 서로 너무나 다른 하루를 보냈다는 것. 애써 설명하고 박 터지게 이해시켜 보아도 서로를 납득시킬 수 없는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사소함이 쌓이고 쌓여 곪아버렸던 것은 아닐까. 1호의 육아휴직으로 반백수 패밀리가 함께 한 150일의 시간은 지극히 평범한 나날들이었지만, 때로는 그렇게 범상한 일상을 그저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를 선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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