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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Sep 09. 2020

공동육아 동상이몽

육아 체질이 따로 있나요?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육아휴직을 앞둔 1호는 '공동육아'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육아란 무릇 부부가 함께하는 것임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아직 아빠의 육아휴직이 보편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여건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반백수 부부도 이 점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아니었기에 1호가 3호와 깊은 유대관계를 쌓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퇴근 후 늦은 밤에만 잠시 교류하는 일상은 두 사람 모두에게 버거웠다. 3호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고, 1호는 아이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 벅차 보였다. 1호가 평균 이상으로 노력하는 적극적인 아빠였음에도 말이다. 1호는 반백수 패밀리가 한데 모여 하하 호호 행복한 모습을 막연히 그려가며 기대감을 키웠다.


2호의 꿍꿍이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1호가 라테파파(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스웨덴의 아빠들 모습에서 유래)로 변모하기를 꿈꿨다. 한 손에는 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며 유유자적 아이를 보는 능수능란한 아빠의 모습. 24시간 육아의 고됨이 어떤 것인지 아는 1호였기에, 사실 1호에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5개월간의 육아휴직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1호가 2호 없이 혼자서도 아이를 충분히 케어할 수 있을 정도의 육아 파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부디 그녀에게 단 하루라도 온전한 자유가 주어지기를! 1호에 대한 신뢰가 최고조에 달하는 어느 날, 2호는 자신에게 하루 동안의 휴가를 달라고 선언해 볼 요량이었다. 2호는 이런 마음을 한구석에 품은 채 1호의 육아휴직을 기다렸다.


육아휴직 초창기의 1호는 찬란하리라 기대했던 공동육아를 시작한 뒤 애석하게도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3호를 컨트롤하랴, 화수분인 양 줄어들지 않는 집안일을 감당하랴 정신과 육체가 모두 방전된 것이다. 그가 낙원일 것으로 생각했던 이 곳은 사실 전쟁터 한가운데, 삼국지의 낙양을 더 닮아 있었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집 상태와 혼돈을 진두지휘 하는 3호.


함께한 지 보름쯤 되던 날 1호가 말했다.


나는 육아 체질은 아닌가 봐. 여보, 그동안 힘들었겠다.


1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2호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자신이 육아휴직을 통해 1호에게 기대할 것은 능숙한 육아 스킬이 아니라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딱히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도 애매한 전업주부의 삶. 사회와 단절되어 자존감이 낮아지고, 일을 아무리 해도 성과가 주어지기는커녕 티조차 나지 않고, 불평을 하면 자격 미달인 엄마가 되는 것만 같은 이 슬픈 굴레를 이해해 줄 사람이 생겼다니.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격이 다른 힐링이었다. 늘 남녀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전업주부를 욕하는 내용만 접하다가, 어엿한 사회인이자 남자 사람인 1호의 입을 통해 공감의 말을 듣게 되니 '이게 바로 공동육아의 힘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달까. 아무튼 2호는 육아휴직 초반부터 공동육아를 통해 뜻밖의 위로를 얻었다.




시간이 약이라 했나. 육아 체질이 아니라던 1호는 속도감 있게 전업주부의 세계에 적응했다. 사실 육아휴직에 임하면서 두 사람이 육아나 가사노동의 분담을 딱히 논의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육아를 하다 보니 서로 선호하는 분야가 존재하고, 3호가 각자를 필요로 하는 순간도 명확했다. 예를 들자면 2호가 유아식을 만들면 1호가 직접 3호 옆에 앉아 식사를 챙긴 뒤 설거지를 하는 식이었다. 3호가 용변을 보았을 때 1호가 간단히 뒤처리를 하고 욕실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주면 2호가 그녀를 씻기고, 1호가 다시 그녀를 데리고 나가 로션을 바른 뒤 옷을 입혔다. 낮잠을 재우는 것은 1호가, 밤잠은 2호가 담당했다. 집안일의 경우도 자연스레 분담되었다. 2호는 주로 요리와 빨래를 담당했고, 1호는 집안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맡았다.


3호와 놀아줄 때에도 각자의 특장점을 살리게 되었다. 2호와 3호가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으며 놀이하는 비중이 높은 편인데 비해,  1호와 3호는 장난감과 몸을 이용하여 놀이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2호가 정서적인 사안이나 섬세하게 챙겨야 하는 부분들을 담당하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힘이 센 1호가 신체활동 대부분을 담당하게 된 셈이다.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공동육아와 가사노동은 삶의 질을 상당 부분 높여주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1호가 3호를 전담 마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반백수 패밀리의 일상이 윤택해졌다. 3호는 2호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놀아주는 1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놀이 방법이 다양해지니 3호가 깔깔깔 웃는 소리도 이에 비례해 늘어났다. 매일 반복해 질려버린 놀잇감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니 전혀 새로운 놀이의 소재가 되었다. 매번 손으로 굴리기만 했던 공을 발로 차며 논다거나, 읽기만 하는 게 당연했던 동화책을 블록처럼 사용하는 식이었다.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는 사실은 놀이의 다양성이 향상되는 것을 담보했다. 실제로 아주 대단한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3호의 피드백이 좋아지자, 1호의 육아휴직 만족도도 급상승했다.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제법 붙었고, 더 이상 육아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후천적인 육아 체질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1호가 3호와 함께 하는 동안 2호는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거나 온라인으로 폭풍 쇼핑을 하는 등 가사 노동인 듯 취미생활 같기도 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로 인해 육아휴직 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나 홀로 일탈을 시행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이제 그녀는 1호에게 온전히 3호를 맡기고 외출할 수도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안 3호가 2호를 찾으며 보채는 일이 사라진 덕분이다.


결론적으로 2호와 3호는 육아휴직 초반에 품었던 나름의 포부를 모두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즐거운 공동육아'와 '육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동상이몽으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결국 각자의 꿈마저도 하나의 행복을 목표로 결합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성취를 동상동몽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같은 잠자리에 나란히 누운 세 사람은 비로소 하나가 된 꿈속에서 내내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동상동몽을 목표로 삼은 반백수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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