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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차언니 Oct 21. 2020

취집 한 아내, 남자 망신시키는 남편

난생 처음 받아 본 악플

- 반백수 1호_육아휴직 아빠
- 반백수 2호_전업주부 엄마
- 반백수 3호_만 1세 아기


반백수 패밀리가 결성된 뒤, 블로그에 게재하는 아빠 육아휴직 일상을 보고 몇 건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고민이 됐다. 이미 블로그에 공개된 내용을 되새기는 수준일 테지만, 사적인 공간이 아니 곳에 공식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심사숙고 끝에 방송에는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직업으로 인해 방송 촬영에 자주 노출되었던 2호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대부분의 방송에는 정해진 논조가 있기 마련이고, 반백수 패밀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프로그램 측의 의사가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린 3호를 시달리게 하면서까지 무리한 추억을 쌓고 싶지 않았다.


대신 지면 인터뷰는 한 건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을뿐더러, 미리 받아본 질문지의 내용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백수 패밀리의 이야기는 세상 속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부부소식을 담은 페이지에 실릴 예정이었다. 인터뷰어가 기존에 진행기사도 여럿 살펴보았는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반백수 패밀리 같은 사람들도 있어요!'라고 알리기에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빠의 육아휴직이 보편화되지 않은, 특히 외벌이 가정의 아빠 육아휴직은 더더욱 낯선 이 땅에 반백수 패밀리의 이야기를 소소하게나마 알리고 싶었다. 반백수 패밀리의 행복한 모습에 용기를 얻어, 단 한 가족이라도 아빠의 육아휴직을 선택하게 되기를 기하는 마음이었다.


인터뷰는 예정일에 맞추어 매체에 게재되었고, 곧이어 네이버 메인에 자리를 잡았다. 애초 인터뷰에 참여했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내용이 가감되어 아쉬운 마음도 들었고, 금전적 부분만이 강조된 자극적인 제목에 눈이 동그래지기도 했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행보를 응원해주었던 지인들에게 수줍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경솔했던 이 행동을 곧 후회하게 되었다. 지인들이 보게 될 악플 때문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네요.


초반에 달린 댓글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반백수 패밀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외벌이 가정의 아빠 육아휴직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다. 대출이 얼마나 되는지, 거주 형태는 무엇인지, 보험료는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비상시에 쓸 돈은 있는지 당장 대답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양가 부모님이 집을 마련해주었으니 가능한 일이라는 확신에 찬 댓글도 있었다. 문화생활이나 외식 등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분명히 양가 부모님의 간과 쓸개를 빼먹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의 인터뷰 기사에는 주변에서 받은 도움을 필히 명기해 달라는 분노 서린 타이핑을 한 사람도 있었다. 답글 속에서 자신들끼리 험한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사람들의 냉정함과 익명성에 가려진 위협적인 언사가 두려웠다. 젊은 부부일수록 미래를 위해 대비해야 한다고,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자 반백수 패밀리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쁜 댓글에 대항해 대신 화를 내주고, 잘못된 내용을 정정해주는 천사 같은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아군이 생겼다 한들 난생처음 받아 본 악플의 잔상은 생각보다 짙게 남았다. 청소를 하다가도, 아이와 놀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넋을 놓기 일쑤였다. 잠도 오지 않았다. '어차피 반백수 패밀리를 알리는 것이 목표였으니, 댓글 따위에는 초연해지자!'는 결심이 무색하게 1시간에 한 번씩은 기사의 링크를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제발 선플이 달렸기를 기도하면서. 연예인들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변명의 답글을 달아볼까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어차피 이미 답을 정해놓은 상대방이 몇 마디 말로 설득될 리 없을뿐더러, 되려 추가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글들을 상상하기만 해도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읽고 나니 맞벌이를 하며 육아를 병행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프게만 느껴진다는 지인의 말에 충격을 받은 탓도 있었다. 모든 일이 의도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는 걸 몰랐던 바는 아니나, 가까운 사람마저 이런 감정을 느낄 정도라면 인터뷰에 응한 자체가 잘못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위축되기도 했다. 어쩌면 별생각 없이 타자를 눌렀을 상대방에게 정성스레 대꾸하는 행위가 구차한 일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3호와 더욱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해진 답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어느덧 정말로 그때의 댓글들을 다시 읽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담대함이 생겼다. 어쩌면 그저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를 조금 되찾고 나니, 어쩐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만드는 흥미로운 악플들도 몇 개 있었다. 그중 상반되는 내용의 두 가지 댓글이 가장 매력적이었는데, 하나는 1호를 '남자 망신시키는 남자'로 칭했고 나머지 하나는 2호를 '취집 한 여자'라고 말한 것이었다.


<1호를 향한 악플>

닉네임마저 '관심종자'인 대단하신 분

2호는 이 댓글을 보고 '여자한테 빌붙어 사는 빈대'에 주목했다. '한 남자가 빈대 붙어 살 정도로 대단한 여자다, 내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호를 향한 악플>

누군지 티가 날지 모르는 닉네임이기에 살짝 가려드림

1호는 이 댓글을 보고 파안대소했다. '능력 있는 여자 하나가 일까지 그만두고 취집 하게 만든 알짜배기 남자'로 승격되었다며 기뻐했다. 앞으로 더욱 큰돈 벌라는 덕담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본 악플의 추억은 생각보다 더 날카로웠지만, 똘똘 뭉친 반백수 패밀리의 단단함을 베어 내기에는 살짝 무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긴 내용 속에 매섭게 날 서있었던 어떤 댓글의 마지막 부분을 아래 첨부해본다. '우리 반백수 패밀리, 그대의 말에 모두 부합한 시간을 보냈으니 꿈에서라도 사과해 줄 수 있나요?'하고 묻고 싶다. 정부에서 이 일을 알고 표창장까지 진짜 준다면 더 고맙겠다.ㅎㅎ


표창장 주세요, 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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