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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n 11. 2024

'섬'을 읽고

 정이흔 작가님의 소설 편 2탄입니다.     


 종일 어수선하게 보내고 책상에 앉은 시각이 밤 아홉 시가 넘었네요. 오늘을 넘기면 또 언제 집중할 수 있을까 싶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러요.      


 모니터에 화면이 켜지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바람인데 어찌하여 매사에 이렇게 느릴까, 하는 의문.      


 앗. 어쩌면 기압 차가 적을 땐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느린 것이 바람의 본성일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어릴 적부터 하도 꾸물대서 ‘꾸물이’라고 불리곤 했는데 지금도 여전합니다. 매사에 느린 점이 글쓰기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외가 없네요.      


 책을 산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나? 넘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할 즈음에야 한글창을 펼칩니다.      


 불현듯 몇 년 전 오이냉채 하는데 1시간 반이 걸렸다는 사실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니한테 밥 한번 얻어 묵을라 카다가 목 빠져 죽지 싶다.” (웃음) 매우 동감하는 말씀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매우 느린 바람이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소설 ‘섬’에는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소설 ‘섬’을 살펴보겠습니다. 섬을 읽으며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소설 속 할머니와 달리 저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버스 타고 마실 다닐 정도로 정정하셨지요. 구순이 넘으셔도 세상만사 참견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아. 지금도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잔소리가 귓가를 맴도네요. 밤이라서 그럴까요. 감성적인 시간이라 그런지 때아닌 눈물이 나네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다는 개인적으로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섬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차후 소설을 읽게 될 분들을 위해 줄거리는 생략하고 저의 감상만 기재할게요.     

 

 주인공이 가봤다는 그곳, 섬. 할머니도 다녀왔다는 그곳.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섬.      


 읽는 내내 그곳이 어딜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어쩌면, 혹시, 주인공 자신이 그곳을 의문투성이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립된 인간의 깊은 외로움’을 섬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추측도 해보았습니다. ‘그해 여름’을 제외하고 각 소설은 단절과 외로움에 대한 단상을 조금씩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지요. ‘그해 여름’의 경우에는 소설의 배경이 섬처럼 작은 마을이라는 점에서 섬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밤이 깊은 관계상 바로 네 번째 소설 ‘퇴직금’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퇴직금’은 읽는 동안 다소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회사생활에서 느꼈던 감정이 자극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알 바가 아니지요.” “그건 사장님 사정이고요.”와 같은 한 과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불편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순 없었을까 싶었지요. 그런 말을 듣고도 퇴직금 잔액 2,524,500원을 상회하는 300만 원을 송금한 사장을 보면서 선한 사람은 대체로 끝까지 선하다는 인상을 받았지요. 그게 왜 억울할까요? 아직은 철이 없는 바람입니다.     


 이번 소설에는 상징물이 많이 쓰였는데요. 섬, 할머니의 통장, 눈, 그해 여름, 퇴직금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남과 여’ 그리고 ‘죽음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첫 책 ‘초여름의 기억’보다 더 재밌습니다. 엽편 보다 단편을 선호하는 탓이겠지요? 표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예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사람들은 왜 죽기 직전에 모두가 비슷한 몰골로 변하는지는 정말 알 수 없었다.’입니다.      


 하나 아쉬웠던 점은 ‘남과 여’에서 이야기가 더 이어졌으면 하는 … 물론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그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며 작아진 뒷모습’으로 여자를 그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눈 오는 날 밤 포장마차에서 혼술 하던 두 남녀가 합석한 … 마당에… 그렇게 보낼 수가 있나요? 남주와는 달리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보여줬으면 하는 독자의 바람은 어쩔 수 없군요. 작가님! 변죽만 울리고 그렇게 끝내시기예요??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되시면 장편으로 써주셨으면 합니다.   

   

 깊은 밤 기압의 변화가 생겼나 봅니다. 저도 변죽만 울리고 휘리릭 감상문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평온한 밤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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