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이면도로 건너편에 학교가 있다. 학교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주차장과 운동장을 개방하여 인근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 그렇지만 나는 학교에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다. 선거철에 몇 번 투표하러 들른 것이 전부다. 나는 담장을 따라 심어진 나무들만 좋아했을 뿐(특히 봄철의 벚나무) 운동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나치기만 했다. 그런 내가 학교를 애용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은 올가을 명석이 아침 운동을 선언하고부터다.
“날이 선선해졌으니 이제부터 운동장을 뛸까 해. 몸무게를 70 언더로 만들어 보겠어.”
그의 결심은 특별한 사건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명석은 웬만하면 뭔가를 도모하지 않는 성격으로 부작위에 특화된 인간이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고 출퇴근을 제외하곤 문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한다. 뜻밖의 계획을 세운 것이 기특해 나는 무조건 긍정의 시그널을 날렸다. “좋은 생각이야. 어쩜, 당신 너무 멋져!” 이십 대에도 80kg에 육박하는 무게를 자랑했던 명석에게 70 언더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혹시 아는가.
생애 최초의 날씬한 몸매를 구경할 요량으로 나는 조금 꼼수를 부렸다. 운동은 자고로 장비빨이라며 체육복 주문을 부추겼다. 내친김에 러닝 웨이스트 백과 저울 구매도 독려했다. 결심을 물리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렇게 명석은 운동을 시작했고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그의 몸무게는 4kg이나 줄었다. 보디라인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특히 두툼했던 뱃살이 사라져 D라인 허리가 H라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변화가 만족스러운지 웃통을 벗은 채 거울 앞을 서성이다 말했다. "아침 운동이라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삶의 형태야."
옆에서 관찰하기에도 정말 멋진 일이었다. 그의 달라진 모습에 함께 뛰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강검진 때가 아니면 무게를 달지 않던 내가 저울 위에 올라가 본 이후(작년보다 1관, 정확히 3.75kg이 더 나갔다) 운동이 불가피해졌지만, 운동장을 돌게 된 계기는 분명 그의 변화 때문이었다.
띠리리리링~~ 기상 알람이 울린 어느 날 아침 명석이 일어나는 인기척을 따라 나도 슬그머니 일어났다.
“같이 가.”
“응? 피곤하지 않겠어?”
“괜찮아. 오늘부터 나도 운동할 거야.”
알람 소리를 듣고도 한 시간은 더 자던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명석이 놀랐다. 나는 그를 더 놀라게 할 작정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빈속으로 나가기엔 추운 날씨여서 음양탕을 만들어서 건네주었다. 그는 감동한 얼굴로 음양탕을 사발째 들이켰다. 나도 남은 물을 마신 후 함께 현관을 나섰다.
문밖엔 새벽의 고요가 깔려 있었다. 어스름한 길을 건너 학교로 향하는데 가로수 가지 끝에 앉은 까치가 방정맞게 깍깍거렸다. 까치의 인사로 잠든 거리가 화들짝 깨어났다. 정문에 들어서자 이번엔 열댓 정도의 비둘기가 보였다. 보통은 스물두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데 오늘은 적은 편이라며 명석이 설명해 줬다. 비둘기의 숫자까지 헤아리는 섬세함이라니. 요즘 들어 그가 참으로 새삼스럽다.
비둘기는 잔디밭 가장자리와 트랙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는데 가까이 가도 겁이 없었다. 사람들이 되려 비둘기를 피해 진로를 바꿔서 달리고 있었다. 비둘기는 부리로 바닥을 콕콕 찍으며 먹이를 구하느라 바빴고 그러다 한차례 날아올랐다.
비둘기는 땅보다 하늘에서 여유로운 선을 그으며 창공을 떠다니다가 사뿐히 건물 옥상에 내려앉았다.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 햇살 아래 적당한 간격으로 앉아 쉬었다. 마치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충전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벽돌색 우레탄의 퐁신퐁신한 촉감을 느끼며 잰걸음으로 트랙을 돌았다. 할머니 세 분이 같이 트랙을 돌고 있었는데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들은 나의 1.5배속 이상으로 걷고 있었다. 심지어 수다에 열중한 채로 말이다.
영어 공부하면서 뛰는 청년, 성경 말씀 들으며 걷는 언니, 슬리퍼를 질질 끄는 젊은이, 차를 타고 와서 나란히 운동하고 돌아가는 중년 부부까지…… 각양각색이었으나 모두 열심이었고 나보다는 한층 빨랐다. 학교는 운동 맛집에, 걷기 고수를 길러내는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옥상에 앉은 비둘기가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와중에 날은 점차 밝아졌고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조만간 나도 새처럼 날아오를지 모를 일이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