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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Dec 21. 2022

창촌리의 겨울, 이의성 작가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에게 눈 덮인 하얀 들판은 빛나는 광야였다. 무한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큰 숨이 있었다. 마당가에 쌓아놓은 나무 가리에 내린 눈은 왜 그리도 깨끗하고 아름다웠을까. 논바닥에 쌓인 눈은 왜 그리도 희고 빛났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훨훨 창공을 날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는 것도 눈이었다.


비료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경사진 밭을 달리고 뒷산 비탈길을 꾸역꾸역 올라가 누가 가장 먼저 내려오는가를 시합하던 곳도 눈밭 위였다. 눈 쌓인 산이 아름다워 눈을 헤치며 산을 오를 때면 산속에서 자란 놈이 미쳐서 산에 오른다는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한 것도 눈 때문이다.

    

자연이 가져다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일부인 눈은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녹여왔다. 그러나 도심은 눈을 미워한다. 내리자마자 흙을 붙고, 염화칼슘을 뿌리며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오직 자동차가 가는 길만을 위해 도심은 존재한다.


자연 일부를 내 삶의 일부를 거부하는 조급함 속에 우리는 삶의 한 부분들을 매일같이 떼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눈 쌓인 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불가한 것일까. 가을 낙엽을 밟으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연인의 길을 오늘은 눈 위에 발자국 새기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 자연이 주는 행복을 내치지는 말자.
    그 속에 내 삶이 있거늘.




창촌리의 겨울, 10호, 이의성


       

작가는 겨울 스케치를 나갔다.

(강원도 홍천) 창촌리의 마을 입구를 들어서자 문득 논 다랑이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작은 논에는 지난가을에 수확하고 남은 볏짚이 일부 남아 있을 것이고 눈 쌓인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였으리라.


작가는 캔버스를 펼치고 그 위에 풍경을 담는다.

앞을 탁 막고선 든든한 산을 담고, 작은 논이지만 농부에게는 큰 살림이었을 논 풍경을 한쪽 귀퉁이에 그렸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남겨 놓음으로써 작가는 농부의 마음도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담았다. 겨울 풍경이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닌 이유는 바로 이런 풍경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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