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이 흰새를 사냥하였는데 그 새를 노리고 뒤쪽에서 다가오는 독수리를 향해 표범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보내는 모습니다. 뒷 배경의 목가적 풍경과 아울러 먹고 먹히는 생존 세계의 모습을 대비시켜 적자생존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작가 해밀턴은 주로 사냥의 긴박한 장면을 잘 묘사하는 것 잘 알려져 있다. 과연 둘의 싸움에서 승자는 지키는 쪽일까 뺐았는 쪽일까. 작가는 결말의 여운을 남겨놓았다.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2022.10.23~2023.3.1)으로 열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서 전시된 작품이다.
작품 설명을 보면 "사냥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즐겼던 고급 취미라고 한다. 귀족과 함께 신흥 부르주아층도 즐겼다고 하는데 사냥 그림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사슴 사냥은 귀족 이상만 할 수 있었으며 새 사냥은 신흥 부르주아 층들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취미이자 과시적인 놀이였던 것이다.
사냥하는 그림을 보니 원시적 방법의 함정, 올무를 놓아 잡거나 화살로 사냥을 나서던 옛사람들 모습이 떠오른다. 선사시대에 사냥은 먹거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수렵의 모습은 구석기 동굴벽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사냥을 통한 군사훈련의 목적과 취미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수렵도狩獵圖는 고구려 고군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무武를 중시하던 고구려는 무용총舞踊塚 등 고분에서 말을 타고 사냥하는 인물을 씩씩하고 속도감 있게 표현했다. 이러한 수렵도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면서도 많이 보인다. 수렵도가 미술사의 한 부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렵은 권력자의 신분 과시와 힘을 기르는 수단의 하나로 영유되어 왔으며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 권력자만의 취미를 즐겼다. 사냥은 힘을 과시하는 수단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모습을 통해 확고한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