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러운 말과 무모스럽기까지 한 행동들이 싫어지고 가까이하는 것조차 소름 끼치는 그 나날들이 두려워지던 순간 나는 어느덧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혼자만의 아집으로 모든 것을 안다는 듯 행동하던 그것을 싫어하던 나는 어느새 그를 닮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닮지 않으려 애쓰는 내 마음이 이미 그의 모습을 가슴에 새겨 넣고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까지 닮아가고 있음은 나만 모르는 비밀이었다. 거울을 들여다보길 두려워하는 마음처럼 나는 내 모습을 비춰볼 거울을 잃어버린 시간 동안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싫어했던 그 모든 것이 이미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안갯속에 스며있는 연기의 내음처럼 알게 모르게 이미 스며들었다. 누군가를 닮아간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나는 사라지고 닮아가는 그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닮아가는 것은 두려움이자 고통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 심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바라보면 좋을 것 같은 그림
한국의 멋-천년의 미소, 오태환, 개인소장
고도 신라 천 년의 미소가 다시 살아났다.
살포시 웃음 짓는 모습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하다.
몇 번의 붓놀림에
고도 천 년 신라의 웃음이 현세로 나타났다.
가장 한국적인
우리의 문화, 우리의 삶이 보인다.
천 년 전의 기와 한 조각 파편 속에 남아있는 모습이 나의 모습과 닮았음을 몰랐단 말인가. 잊고 싶었던 나의 모습일지라도 그 깨어진 모습일지라도 조각의 한편 만으로도 나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쉬이 알 수 있으니 그것은 미소였다.
나의 미소가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만이 지닌 것이라고 자랑하였건만, 그것은 이미 천 년 전의 어느 누가 지었던 표정으로 나는 그 표정을 따라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얼굴을 대면하듯 한 조각 파편의 기와 조각에서 나는 오늘도 그 미소를 떠올린다.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그 미소를 언젠가 또 다른 이가 서로 닮았음을 이야기하는 순간까지 모르는 척 지내볼 요량이다. 내가 깨달은 시간만큼 너도 기다려 보라는 듯이 나는 나의 배움을 전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깊숙이 숨길수록 더 간단히 드러난다는 것을. 어느 날 천년의 고도가 쉽게 나의 눈에 띄었듯이 바람결에 빗줄기 속에 씻기어 나타나듯 무지개 구름 타고 나타날 것이다.
문득 고도의 시간을 찾아 내 눈앞에 던지듯 보여준 작품 속에서 그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내 삶의 한 부분도 이렇게 남아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