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수탉, 힘찬 울림'이라는 주제로 이승철 작가의 전시가 춘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2022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와 연계하여 열리는 이번 전시는 먹거리와 예술이라는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을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아침을 여는 수탉과 한 해를 시작하는 봄의 도시인 춘천(봄내)은 이미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지역의 축제가 단순한 먹거리를 벗어나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방법의 하나로 예술과연계성을 만드는 것이다.
1, 2층으로 나누어진 전시공간은 1층에 대형 작품을 배치하여 웅장함과 작품의 방향성을 보게 하고, 2층에는 20~30호 작은 작품으로 수탉의 의미를 통한 작품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하여 작품을 관람하는데 이해를 돕게 한다.
이번 초대전에서 이승철 작가는 그간의 수탉 작업 전반에 대한 자신의 작품 방향성을 보여주는 전시로 구성했다. 요즘 한창 작업하고 있는 철판 작품은 전시에서 빼고, 초기 그래픽적 작품과 현재의 회화적 단계로 넘어서는 과정 작품까지 제왕 수탉의 완전한 흐름을 보여준다.
전시된 작품 중 일부는 작가의 작품 의도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거나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몇 작품이 있는데 의미를 알면 보는 즐거움이 크다. 이런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면서 전시를 볼 수 있는 것도 관객으로서는 큰 즐거움이다.
그중 하나는 못이 튀어나온 작은 각목을 붙여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수탉의 날카로운 발톱을 통한 강인함과 봄날의 부드러운 새싹을 연상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냥 언듯 보면 이 작품이 수탉과 어떤 연관성을 지녔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는 가장 큰 작품 중 하나다.
두 번째는 12지 친구들이라는 작품으로 열두 달의 띠 동물을 표현했는데 자세히 보면 한문으로 쓰인 글자(성誠= 言말씀 언 + 成이룰 성)가 보인다. 작가의 모친께서는 아들을 위해 매일같이 이 글자를 쓰시면서 아들이 성공한 작가가 되기를 기원하신다고 한다. 작가는 이 글씨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부모의 마음을 어찌 다 품을 수 있겠는가.
세 번째는 닭 부조 형태를나타낸 작품으로 물감이 녹아 굳어진 것을 붙여 작품을 했다고 한다. 바탕은 녹이 난 것 같은 푸른색을 띠고 있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네 번째는 병풍처럼 만든 두쪽 자리 작품으로 모두 연결하면 6쪽 병풍이 된다. 앞면은 수탉의 작품이 들어있고 뒷면은 자개로 작업한 옛 작품 속 풍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옛것과 현대를 보여주기 위해 어느 집 장롱 문짝에 있는 조개 작품을 그대로 활용하여 그 뒷면에 수탉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옛 장인의 수고로움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놓음으로써 새로운 작품의 조화를 만들어 내었다.
다섯째는 작품의 액자다. 액자의 모형도 각기 다 다르고 특이함을 느낀다. 바로 옛 집안의 문짝을 그대로 재활용하여 작품을 만든 것도 있고 새시 속에 들어있는 철제 프레임을 활용하여 만든 것도 있다. 또 기존의 액자틀에 새로운 색을 입혀 작품과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써 작품의 멋을 살려냈다. 정형화되지 않은 틀이 자유로운 작품과 잘 어울린다.
특히, 전시장에는 이승철 작가 작품이 아닌 작품 한 점이 같이 전시되어있다. 황창배(1947~2001) 작가의 말년 작품이다. 약간은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작가의 작품과 연결점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정 황창배의 자유로운 파격을 만난 이후 획의 과감한 형상을 구획하는 골(骨)로 삼고 한국화의 특수성을 서구적인 보편성 속에 조화시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를 작품 안에 구현 중이다. 민화와 팝아트를 조화시킨 독특한 수탉의 형상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정서 속에서 자신만이 개성화를 이뤄낸 오랜 고민의 결과이다"
작가는 황창배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음을 직접 이야기한다. 황창배 선생과 인연으로 작고 후 선생이 쓰시던 각종 재료를 가져와 그대로 사용한 작품도 있다. 결국 황창배 선생이 보여준 독특한 화풍에 영향을 받아 작가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나간다고 할 것이다.
이승철 작가의 작품은 수탉의 사실적 표현보다는 닭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인간이 지닌 고민과 희망 등 모든 것을 드러냄으로써 이 우주의 주인으로써 자신의 주체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고 할 것이다.
작가가 지닌 무한한 도전의식과 마음 한쪽에서 우러나는 진실이 모여 수탉은 날개 잃은 새가 아닌 봉황의 날개처럼 활짝 펴며 삶의 기운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헌 속의 다양한 닭의 귀한 존재처럼 그 위상이 낮지 않지만 현대에 다시 그 날개를 펼 수 있었던 것은 현대와 고전의 결합을 통한 변화의 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팝아트 같은 단순함에서 시작했지만 그 간결함을 통해 회화의 틀을 완성해 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굵직하고 간결한 선의 변화, 그리고 빠른 크로키 Croquis 같은 흐름의 유연함, 그리고 숨길 것은 숨기고 드러낼 것은 드러낸 표현의 간결함이다. 여기에 작가만이 지닌 독특한 색의 배열이 그 특징을 강조한다. 원색을 활용한 자극과 그 느낌의 극대화다. 강렬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그만의 원색 활용은 수탉의 의미 전달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품 방향에 대한 한줄기 정리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동안 해온 크로키, 회화, 부조, 설치 작품 등 변화와 앞으로 갈 방향은 같지만 다른 것이 될 수있다. 그것을 어떻게 정착시키느냐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관객의 요구, 작품에 대한 반응은 그저 주변인의 말일뿐이다.
이번 전시(8.19~8.31) 기간 동안 전시장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계속 관객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객들과 교감을 쌓기 위해 수탉 드로잉 작품용으로 300개의 액자까지 준비했단다.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만큼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