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모습, 이완숙 작가
꿈과 두려움, 여유로움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지는 것도 많지만 고민도 늘어난다.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쌓여있는 인과관계의 짐이라 할 것이다. 젊음의 혈기로 이겨냈던 시절이 있었다면 힘과 패기보다 노련함이라는 단어로 삶을 이겨내 온 시절이 있다. 우리는 그런 시기를 완숙미라고 한다. 삶의 무게도 지녔고 혜안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짊어지고 온 시간의 짐을 하나둘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중년中年이다. 이 말은 인생의 중간쯤이라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이 가운데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제2의 인생기人生期다. 이 시기는 배우고 가르치고, 가진 것과 나누는 것 등에 대한 행동이 따르는 시기다. 약간의 포용의 힘이 생기는 여유가 있다.
중년이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 표정, 삶의 행태를 통해 대략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표방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완숙 작가의 조각에서 이런 중년의 모습을 본다. 어떤 모습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고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것 같은 평안함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작가의 작품은 젊은이의 권리 같은 날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전혀 없다. 멋진 가방을 들고 있지도 않다. 멋진 여성, 멋진 남자의 표상 같은 모습보다는 흔히 주변에서 보는 보통의 인물 군상이다. 멋지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중후함이 베어나는 모습이다. 바로 중년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모든 풍파를 어느 정도 겪고 난 사람들의 표정과 몸매 같은 느낌이다. 원피스를 입었지만 온몸이 두리뭉실한 여인, 그리고 배가 나온 남성의 모습에서 중년을 떠 올린다.
그의 작품에서는 표정을 찾을 수 없다. 그냥 무던한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모습이 보일뿐이다. 꽃을 들었던 가방을 들었던 함께 있던 둘이 있던 감정의 선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에서 삶의 의미를 느껴본다. 그의 작품은 무거운 돌도, 철 작품도 아니다. 언론과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스케치의 모양에 따라 뼈대를 만드는데 그 위에 흙을 붙여 원하는 형상을 빚어요. 그 형상에 석고로 틀을 떠내어 합성수지를 붓습니다. 합성수지가 굳으면 세밀하게 다듬어요. 그 원형의 조각품에다 아크릴 칼라를 채색한 후 광택제를 바르고 건조하여 완성합니다. 시멘트 작업도 다르지 않아요."(강원도민일보, 2020.6.20)라고 자신의 재료 사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모습이 아닌 집과 나무, 건물 등 사물의 조각에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화려함이 없는 은은한 색이 주는 영감이 있다. 오래 묶은 어떤 느낌 같은 그런 여운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부드럽게 다가온다. 화려하거나 원색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세밀한 모든 것을 거부했다. 중년의 풍성함처럼 두리뭉실하게 처리하여 선과 선의 구분을 없앴고 각을 없앴다. 중년의 모습에 볼 수 있는 선과 면의 모습이 사라지는 단계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중년에 다다른 작가가 바라다본 중년인의 모습이 아닐까. 주변에서 보는 인물들에 대한 탐구의 현실 같은 이미지다. 중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꿈, 현실 도피 같은 상상이 남아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하늘을 날고, 멋진 남(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구름 우산을 쓰고, 구름 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것은 중년이 되어서도 놓을 수 없는 나만의 이상理想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드러낼 수 없는 중년인의 무표정 같은 표정만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꿈꾸는 소녀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는 중간자의 위치다. 그 중년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작업을 한다.
* 대문사진: 20221009, 에코아트페어 제로섬씽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