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34도, 자동차 에어컨을 2단 이상으로 틀어야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덥다. 그런 무더위 속에 폭포를 보러 갤러리를 찾았다. 조광기 이부강 작가 2인전이 열리는 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카프다. 날이 더워서인지 갤러리는 조용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벽면에 청색과 하얀색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폭포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보기만 해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함이다.
조광기 작가의 폭포는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압권이다. 하늘 높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정도로 긴 물길을 이루기도 하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웅장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더욱이 하얀 물보라는 청색의 바위와 대조를 이루며 그 강렬함을 자극한다.
그런데 오늘 문득 폭포를 바라보다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한겨울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빙벽이 떠오른다. 마치 청색과 대비된 하얀 물줄기가 한겨울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얼음처럼 보인다. 청색의 암벽에 약간의 하얀색 기운이 있어 더 강조되는 듯싶었다. 시원한 물줄기를 흘려보내던 폭포는 어느 순간 얼음으로 변하여 흐름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맹렬히 한여름의 폭포수가 흐르고 있다. 눈에 장막을 치듯 얼음으로 그 모습을 가렸다가 봄이 되면 더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래전 보았던 금강산 비룡폭포나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비룡폭포가 그랬다. 하늘을 가르고 쏟아지는 느낌이다. 힘찬 물줄기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산 전체를 울리며 쏟아지는 모습은 공간을 가르는 에너지였다. 그 물줄기에 손을 담그고 그 느낌을 받아들일 때 나 자신도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맹렬히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서버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나는 살아가고 있다. 보이는 데로 그 모습을 이해하지만, 다시 모습으로 드러난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한 점의 그림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생각해 본다. 작가의 폭포 작품이 어느 순간 변화를 가져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 그 존재는 생명을 갖는다. 오늘 한줄기 폭포가 얼음빙벽이 되어 나타나듯이 매 변화의 순간엔 누군가 그 자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시원한 폭 포수를 맞고 얼음으로 변하는 순간까지 맞이했으니 나는 한여름에 겨울까지 미리 다녀온 것이다. 폭포 앞에서 더위를 떨치고 밖으로 나오니 한여름의 무더위도 물러간 느낌이다. 그림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그 평안은 행동을 여유롭게 만든다.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더 걸려 전시장을 찾았던 시간이 아깝지 않은 하루였다. 202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