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지나고 3월의 봄이 무르익어가던 날, 고등학교 때 국어담임이셨던 선생님의 점심 초대를 받았다. 선생님은 시인이시다. 시내 오래된 건축물인 빨간 건물의 식당 곰배령에서다.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서 단골 맛집의 쿠키를 사서 도착하니 은사님 부부는 벌써 와 계셨다. 점심 약속은 벌써 몇 주 전에 잡혔다. 지난 2월 이때쯤 갑자기 전화를 주셨다. 시정소식지에 책 소개가 나왔는데 사서 보아야겠다고 축한다고 전화를 주신 것이다. 사실 1월에 발행되었지만 선생님께 보여드리기 쑥스러워 말씀을 안 드렸었는데 시정소식지에 실린 것을 보시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오늘 그 책을 들고 나오셨다. 사인을 해 달라고 하신다. 책을 보니 벌써 다 읽으시고 군데군데 표시도 해 놓으셨다. 글을 평생 써오신 선생님께 부끄러움이 앞서 바로 해드리지 못하고 식사 후 차를 마시러 가서 서명을 해 드렸다.
글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간결하고 전달력이 좋다고, 이제 무슨 글을 써도 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감사한 마음이다. 진짜로 하실 말씀이 얼마나 많으셨겠는가. 그래도 단 한마디 조언조차 없이 잘 썼다고 하시고 계속 쓰라고 하신다. 마음에 감사드린다. 큰 어른이시다. 사실 선생님과는 고교 때 국어 수업을 들은 것 이외에는 거의 뵙지도 못했다. 몇 년 전 ㅇㅇ부시장으로 가기 전 까지는 한 번도 연락을 드린 적이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 책이 나오면 가끔 구입해서 볼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시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계셨다. 그런 계기가 요즘까지 뵙고 가끔 식사를 하게되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 제자들 또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도 시정소식지에 매달 글을 쓰시는데 의미 있고 소중한 추억을 선사하는 글이다. 인기 최고다. 선생님 글은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힌다. 간결하고 정리되어 있다. 누구나 읽으면 즐겁고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깊이 있는 성찰의 글을 쓰신다. 잊혀가는 것을 되살리고 지역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생각하는 여유를 주는 글이다. 그 글은 앉아서 쓰는 것이 아니다. 현장을 보고 그 감흥을 담고 기록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종합해 구성한다. 읽으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현장감 있으며 교육적이기도 하다.
얼굴은 언제나 온화하고 밝다. 웃을 때는 어린아이 같이 해맑음이 보인다. 그 웃음이 좋다. 고희가 넘어서 맑은 웃음으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 얼마나 될까. 닮고 싶은 모습이다. 오늘 선생님이 내 책에 보여주신 관심 또한 그 맑은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격려하고 다독이며 용기를 주시는 행동은 어른의 모습이다 이런 분을 가끔 뵙는 것 만으로 내 삶이 윤택해 짐을 느낀다. 선생님 말씀처럼 앞으로 책을 계속 내볼까 한다. 자신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진정 나의 글을 좋아하는 분도 생기지 않을까. 봄날에 꿈을 좇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