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따가웠던 여름이 끝날 것 같지 않더니만...
여름이 고집스럽게 버티고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늘한 공기가 들어섰다. 여름은 하루아침에 당차게 들어서버린 가을에 밀려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나 싶더니 잠시 돌아본 사이 어느새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 고생했어. 잘 있어.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여름이 가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는데 샤워실 문을 열자 느껴지는 서늘한 밤공기에 깜짝 놀란 몸뚱이가 금세 쪼그라든다. 겨울이 되면 더 추울 텐데... 가을의 운치를 떠올려보기도 전에 이미 겨울을 떠올리는 내 마음을 바라보니 가엾다.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싸고서 여름동안 꺼멓게 타버린 얼굴빛을 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아이들 가을맞이 옷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겨 대충 수분젤을 처벅처벅 얼굴에 문지르고 드라이기의 더운 바람을 머리에 쏘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그 사이...
나는 드라이기가 세차게 보내는 뜨거운 열을 두피에 보내며 내 공허한 가슴에 불어닥치는 서늘한 9월 말의 밤공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