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 코치’가 되었다.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저 아이 옆에 가장 오래 서 있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연습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서 욕심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던져봐.”
“방금 스윙은 아니야.”
“아까 코치가 말한 거 기억나?”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나는 점점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하나를 고치면 또 다른 것이 보였고, 그럴수록 지적은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 나 지금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코치를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불안한 마음을 앞세운 아빠일까.
아이는 이미
실패도,
긴장도,
부족함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 위에 내 말까지 더해지면 연습은 어느 순간 배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조금씩 바꾸기로 했다.
설명은 짧게
연습은 단순하게
잘한 건 바로 말해주기
지적은 최대한 줄이기
비로소 아이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이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연습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실수해도 다시 공을 집어 드는 손이 가벼워졌고, 연습이 끝나면 아이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이게 좀 나아진 것 같아.”
그 한마디가 이전의 어떤 지적보다도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때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지도보다 편하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아빠 코치로서의 가장 큰 실수는 아이보다 내가 더 앞서가려 했던 순간들이었다.
야구는 아이의 것이고, 나는 그 옆에서 조금 뒤에서 걸어도 충분했다.
연습은 계속됐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아빠 코치는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예전처럼 조급하지는 않다.
아이의 속도를 믿는 것.
과정을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연습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향해 조용히 준비를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