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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24. 2020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말

엄마는 언제나 엄마라서

 전화를 끊고 생긴 일이다.

 침대에 엎드린 채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리친다. 흔들리는 침대, 구석으로 밀려나는 이불, 침대 밖으로 도망가는 베개들. 내리치던 손을 멈추고 시트를 움켜쥔다. 나와 영혼이 분리될 것 같다. 침대 시트를 물었다. 침을 흘린다. 이때 처음 알았다, 울음에도 손발이 있다는 것을. 파묻은 얼굴을, 시트를 있는 힘껏 물고 있는 얼굴을 울음소리가 얼굴이 붉어지도록 밀어내고 있다. 침대에서 나가떨어져 마트 장난감 코너 앞에서 몸부림치는 아이 같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친다. 무릎이 멍이 들고 손은 여기저기 까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아이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은 계산에 두지 않는다. 결국 갈팡질팡하던 영혼이 멈췄다. 대자로 뻗었다. 무인도에서 대자로 누워 구조요청을 하던 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반투명한 유리로 햇볕을 잘도 들이던 창문이 그렇게 창백할 수가 없었다.      



 투병이 끝나고 나서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큰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항상 마지막 멘트로 내일 당장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재발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입원했을 때 16년 만에 같은 백혈병에 걸려 입원 한 사람을 봐서 그런 것 같다. (의료진 선생님들은 재발이 아니라 다시 같은 병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재발과 다시 그 병이 걸린 것의 차이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다시 아플 일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처음 투병을 시작했을 때에도 나는 겁이 나지 않았고, 다시 투병해도 즐겁고 유쾌하게 할 자신도 있었다.     



 고로 전화는 재발을 알리는 소식이 아니었다. 학교를 복학 한 이후 졸업을 해도 쭉 혼자 떨어져 살게 되다 보니 평소처럼 엄마의 안부 차 전화였을 뿐이었다.

 엄마는 보호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낮에는 일을 다녀오느라 항상 오후부터 병동에서 나를 간호하셨지만 특유의 유쾌함과 귀여움을 잃지 않았다. 태생이 귀여운 사람이랄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대하는 방법은 엄마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주변 사람에게 유쾌하고 살가운 만큼 엄마에겐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포장된 목소리로 엄마는 대학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별 일이 아니라고 하는 엄마의 태도는 여느 때와 같이 유쾌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살갑지 못한 나는 대학 병원이란 말이 머리에 꽂혔다. 추궁을 해도 엄마는 별 일이 아니라고만 말했다. 내게 엄마는 엄마인 것처럼 엄마에게 나는 아들이었다. 낮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간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 사람.

 통화를 끊지 않고 카톡으로 동생에게 연락해 상황을 물었다. 입으로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손은 답장이 느린 동생을 다그치고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갑상선암인 것 같다고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왔다.    

 


 화가 났다. 왜 내게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별 일 아닌 걸로 대학 병원에 간다고만 말했는가. 엄마를 다그쳤다. 병원에서처럼. 내가 당장 느끼는 고통을 어떻게든 분산시키고 싶어 엄마를 닦달하던 것처럼. 나는 바로 엄마에게 수술이 끝나면 집이 아니라 요양 병원에 가서 요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갑상선암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최소한 치료 중 식단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식단 조절을 집에서는 분명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거란 것도. 아픈 사람은 엄만데 엄마는 또 죄인처럼 알겠다는 말과 미안하단 말만 반복했다. 전화도 내가 먼저 끊었다.



 엄마가 암이라니, 엄마가

 내가 재발하는 것보다 오십 배 오백 배 오천 배는 더 두려웠다

 이기적 이게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중2병 시절부터 수도 없이 생각해봤던 것인데 도대체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니 엄마가 아픈 와중에도 나는 나라서 이기적인 나라서  

 군대에서 응급실로 후송되었을 때

 울먹이던 엄마에게 왜 우냐고 다그치던 것이

 병을 알려주기 싫은 내가 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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