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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27. 2020

무능함의 연속

불행 후 확인된 것은 인간관계가 아니라 내 이기적인 마음뿐

 비가 비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쏟아져 내리는 날이었다.

 구글 지도와 다음 지도에 같은 주소를 검색했는데 목적지가 서로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주소와 그 주소의 주인이 사찰이라는 것뿐이었다. 주소를 알려준 동생도 아직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을 사찰은 작지는 않을 것이다. 고인의 가족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민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휴대폰 어플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에 믿음을 배신 한 적 없던 휴대폰 지도가 양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두 곳 다 가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구글 지도는 산 가운데를 표시하고 있었고 다음 지도는 허허벌판 한가운데를 표시하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주소를 입력해도 결과는 같았다.      


 사찰은 보통 산에 있으니까 구글 지도가 내게 더 설득력 있게 와 닿아 먼저 가기로 했다. 지도에서 알려주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눈에 보이는 산은 아니 정확히는 언덕은 사찰이 있기 힘든 모양새였다. 산이라기보다는 높은 언덕이었고 눈을 씻고 보아도 사람이 다닐만한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와 산을 번갈아 쳐다보다 혹시 모르니 언덕 위를 오르기로 했다. 


 흙탕물이 발목까지 적셨다. 수시로 빗방울을 닦아내며 지도를 확인하고 경사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우산은 더 이상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산악 스틱에 가까워졌다. 아무리 찾아도 사찰은커녕 사찰 터도 보이지 않았다. 벌 받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벌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딱 젖은 쥐 꼴이 되니까 일단은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다시 정류장까지 내려왔다. 사찰은 이곳에 없다. 다음은 다음 지도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사찰이 있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주소를 찍으며 그 근처에 사찰이 있냐고 물으니 의아해했다. 역시 벌판은 벌판일 뿐이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골함의 주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던 동생이었다. 대학 후배로 들어왔지만 후배라는 명칭보다 동생이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담담하게 도와줄 방법을 고민하고 학생회 친구들과 헌혈증을 모아준 녀석이다. 몰랐는데 내 전화를 끊고 많이 울었다고 장례식장에서 들었다. 날 걱정하면서 울었던 것을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내가 복학할 때에는 그 녀석은 졸업을 했다. 나도 염치가 참 없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놓고는 연락을 제대로 못했다.



 좋지 않은 일은 순간적이기도 하지만 점층적이기도 하다.  

 나는 더 동생에게 연락을 먼저 했어야 했다. 순간적인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 아이는 나를 위해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했는데 나는 점층적으로 가라앉아가는 아이의 일상적인 소식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그렇게 살리겠다고 난리 쳐놓고는 자기는 그렇게 가다니 그걸 모르고 있다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심한 사람이었나.      









 내 병보다 자신의 거스러미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던 이를 잊지 못한다. 

 그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울었다는 동생. 

 동생을 보내던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지 못했다. 

 뭐라도 하려고 발버둥 쳐준 동생 앞에서 나는 너무 무능했다. 


 사찰을 찾지 못했지만 비는 계속 쏟아진다.

 제대로 보내지도 못해놓고 나는 이렇게 살아있고

 자꾸자꾸 살아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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